[BOOK] 산에서 만난 호랑이, 떡 대신 이야기 달라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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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재미나면 안 잡아먹지
강정연 글·김정한 그림
비룡소, 121쪽
8000원, 초등 저학년

‘창작 옛 이야기’란 독창적 작품세계로 꾸준한 사랑을 받는 강정연 작가의 신작이다. ‘창작 옛 이야기’란 어릴 적 할머니를 졸라 들었음직한 전래동화를 다양한 방식으로 패러디하거나 재구성하는 형식으로 이 작품도 그의 장기를 여실히 보여준다. 제목에서 보듯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라는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에서 줄거리를 빌려왔다. 사람 잡아먹는 이야기는 그대로지만 지은이는 여기에 세 가지 이야기를 버무려 ‘액자소설’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옛날 옛적,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 다섯 집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해서 조막마을로 불리는 곳이 배경이다. 주인공 방실이는 주막집을 하는 엄마와 함께 사는 열 살짜리 소녀다. 어느 날 엄마가 큰 병이 나 의원을 모셔 와야 하는데 동네사람들이 나서질 않는다. 봉우리가 세 개인 마을 뒤 삼봉산을 넘어가야 하는데 거기엔 두 귀가 검은, 사나운 호랑이가 살기 때문이다. 결국 방실이가 새벽길을 나서는데 아니나 다를까 사람 잡아먹는 호랑이가 나타난다.

“어흥!” 으르렁대는 호랑이에게 방실이는 떨리는 가슴을 안고 능청스레 큰 절을 한다. 그리고는 ‘세상에서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는, 귀 검은 호랑이님은 재미난 이야기 하나만 해주면 누구라도 살려준다면서요?’라고 선수를 친다. 그렇게 호랑이를 달래서 고개를 넘을 때마다 재미있는 이야기로 위기를 넘긴다. 이 대목에서 지은이의 솜씨가 발휘되는데 이야기 세 자락이 모두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재미가 넘친다.

어머니를 고칠 의원을 만나러 가는 길에 호랑이를 만난 방실이는 재밌는 이야기로 위기를 모면한다. 동화 속 호랑이 캐릭터는 시대가 변해도 친근한 역할로 아이들과 교감한다. [비룡소 제공]

아주 오랜 옛날 모든 동물들을 달달 떨게 만들었던 동물의 왕 ‘달달대왕’ 이야기, 내세울 게 없어 다른 동물들의 멸시를 받던 끝에 길고 큰 몸과 독을 갖게 된 뱀 이야기, 다른 낙이라고는 없는 황량한 곳에 살다가 천 년이 가도 닳지 않는 이야기 주머니를 두 개나 받은 동물이야기꾼 이야기가 그것이다. 그 과정에서 작가의 상상력이 빛난다. 연약하고 느린 달팽이가 원래 이빨이 만 개나 달린 무시무시하게 큰 동물이어서 벌벌 떨던 다른 동물들이 큰 집을 지어 모셨다든가, 뱀이 원래 귀엽고 수줍음 많은 작은 존재였다든가 하는 대목은 기발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다.

물론 이 작품에서 교훈을 끌어낼 수도 있다. 방실이의 효성도 그렇고, ‘달달대왕’이 커다란 집이나 굽실거리는 신하도 필요 없으니 자기 몸에 맞는 작은 집 하나만 달라는 ‘달달대왕’의 기도에서도 어린이들에게 해줄 말이 있을 법하다. 하지만 이야기는 이야기. 어린이들이 동물의 기원에 대해 상상의 날개를 펼치면서 부담 없이 재미를 즐기도록 하는 것이 이 책을 제대로 읽는 방법이지 싶다. 사족 하나. 조선 시대 민화를 떠올리게 하는 굵고 투박한 선과 우스꽝스런 표정이 잘 드러난 삽화도 이야기를 든든하게 받쳐주면서 재미를 돋운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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