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민을 핫바지로 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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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주당과 자민련은 벽창호인가.

그렇게 따가운 질책과 국민의 실망을 확인하고도 또다시 의원 꿔주기를 자행하니 그 오만함과 뻔뻔스러움에 질려버릴 지경이다.

지난번 세명이 옮길 땐 당 지도부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더니 이번엔 여당 대변인이 직접 나서 "협의해 결단했다" 고 발표했다.

민심이야 분노하든 말든 이번엔 아예 드러내놓고 "우리는 하겠다" 는 식이니 국민 무시요, 국민에 대한 도전과 다름없다.

우리는 의원 추가 임대 작태를 보며 현 정권이 과연 의회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정권인가 하는 본질적 의문을 갖는다.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이 정권의 독선적 태도다. 1차 이적(移籍)파동 당시 쏟아진 국민적 지탄을 감안한다면 먹통 정권이 아니고서야 또다시 그런 일을 되풀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도 되지도 않는 논리를 앞세워 탱크처럼 밀어붙이니 권위주의 정권보다 더하다는 느낌이다. 민주당은 자민련이 교섭단체가 되는 게 정치안정을 위해 필요하다고 강변한다.

과연 그런가?

오히려 정국을 여야 강경대결로 몰아가 정치안정을 해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민주당 내부에서까지 나오고 있다. 눈앞의 이익에만 어두워 앞뒤를 가리지 못하니 이러고서야 어찌 집권정당이라 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자민련 봐주기라 해도 그 수법이 너무 천박하다. 작금의 정국은 안기부 자금의 선거자금 전용 수사로 소용돌이치고 구여권과 야당이 궁지에 몰려 있다.

바로 그 혼란의 틈새를 이용, 전격적으로 단행했다. 부도덕한 행위에 집중될 비난을 최소화하겠다는 얄팍한 계산이 엿보인다.

내부 고민의 흔적도 없고, 지도부와 당사자 몇몇의 밀실작품일 뿐이니 공당이 취할 정도(正道)가 아닐 뿐더러 일반 대중이 요구하는 수준 높은 정치와도 거리가 멀다.

또 1차 이적파동 때 '몰랐다' 는 당 지도부의 발뺌이 거짓이었음이 드러난 셈인데도 그에 대한 사과 한 마디 없으니 국민을 핫바지로 보고 하는 짓 아닌가.

정권의 모습이 이럴진대 설령 대통령의 국정쇄신책이 나온들 무슨 기대를 걸 것인가. DJP공조 복원의 첫 작품으로 의원 추가 임대를 선보였으니 정권의 의도는 분명해진 셈이다.

여권에서 강조하고 있는 '강한 정치' 의 정체가 야당과 민심을 제쳐놓고 DJP의 반쪽 힘으로만 '나홀로' 정치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안기부 자금 전용에 대한 검찰수사 역시 그같은 정치일정과 무관치 않다는 의혹도 더욱 짙어지게 됐다.

그러나 이런 막가파식 정치는 이제 통하지 않는 시대다. 우선 국민이 용납하지 않는다.

우리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지난해 연말 '반성한다' 던 모습을 잊지 않고 있다.

그때의 마음가짐으로 돌아가 여야 상생정치의 복원에 노력하고 위기극복에 국력을 집중시켜줄 것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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