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츠키주의 거역의 행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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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트로츠키주의자 셋이 모이면 네 개의 분파가 생긴다는 야유가 있다.

그것이 절충을 거절하는 고집의 결과거나, 오염을 차단하려는 결벽성의 산물이라면 그 야유는 별로 불쾌하지 않을 터이다.

트로츠키주의자의 혈관에는 비운(悲運)의 사부가 남긴 유훈이 연면히 흐르고 있다.

일국사회주의 건설 대신 세계자본주의에 대한 전면 투쟁을 강조하고, 단계별 혁명 대신 민주주의적 과제와 사회주의적 과제를 동시에 수행하려는 '영구혁명론' 이 그러하다.

개별 국가 대신에 세계 체제를 분석 단위로 채택하는 이매뉴얼 월러스틴이나, 지배 요소와 피지배 요소의 '불균등 결합 발전' 을 주변부 상황에 원용하는 종속이론가들은 다소간 트로츠키주의적 관점을 공유하고 있다.

국제사회주의와 '제4 인터내셔널' 그룹은 트로츠키주의의 양대 산맥이다.

그런데 이들의 사이가 여간 불편하지 않다. 레닌의 제3 인터내셔널, 즉 코민테른이 소련의 일국사회주의를 방어하는 스탈린의 충견으로 돌변하자 트로츠키는 1938년 파리에서 제4 인터를 창건했다.

이 기구 통합사무국(USFI)의 실질적 책임자로서 트로츠키주의적 투쟁 노선을 담지해온 인물이 1995년에 타계한 벨기에의 에르네스트 만델이었다.

그는 세계 트로츠키주의 운동의 '적자' 일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대가였다.

펭귄출판사가 야심적으로 펴낸 '자본론' 개역판에 난다긴다하는 경쟁자를 물리치고 '서문' 을 집필하는가 하면, 레닌의 '제국주의론' 이후 자본주의의 변모를 '후기 자본주의' 라는 저서에 독창적으로 정리하기도 했다.

혹시 그는 마르크스와 레닌의 다음 자리에 자신이 앉고, 자본론과 제국주의론 다음에 자신의 저서가 오르기를 바랐을지 모른다.

국제사회주의 운동 역시 그 기원은 제4 인터의 영국 지부였고, 분열의 발단은 제4 인터의 위상에 대한 승인 여부였다.

비록 트로츠키 자신에 의해 창설되었지만, 제4 인터는 자본주의의 파국이 임박했다는 성급한 정세 판단에 의해 '위로부터' 급조된 국제 지도부인데, 이제 그 판단이 틀렸으니 기구도 해체해야 옳다는 주장이다.

사부를 거역한 또 다른 사례로는 소련의 정체성 시비가 있다. 트로츠키는 스탈린 치하의 소련이 관료적으로 타락했지만 그래도 '노동자 국가' 라고 규정했다.

만델은 이 관점을 고수했으나, 토니 클리프는 노동자가 통제하지 않는 노동자 국가가 어떻게 가능한지 반문하면서 이를 국가자본주의로 대체했다. 그에 따르면 중국과 쿠바의 현실도 국가자본주의 규정에서 예외가 아니다.

한국전쟁에 대해서도 입장 차이가 대단했는데, 제4 인터는 이를 미국 제국주의에 맞선 민족해방투쟁으로 보고 북한과 중국을 지지했으나, 클리프는 미국과 소련의 대리 전쟁일 뿐이라는 관점에서 그런 지지를 비판했다.

트로츠키주의의 정통성을 지킨다는 점에서 만델은 분명히 한발 앞서 있다. 반면 클리프의 '발전적' 해석은 때때로 트로츠키 이론의 핵심까지 흔들고 있다.

후자를 편드는 캘리니코스의 변호에 따르면 "진정한 트로츠키주의자는 트로츠키 사상의 혁명적 본질, 즉 노동자 계급의 자기 해방 사상을 보존하기 위해서 정통 트로츠키주의의 도그마를 거부하는 사람이다. "

그렇다면 진정한 트로츠키주의와 정통적 트로츠키주의를 구분하는 척도는 무엇인가? 제4 인터는 과연 노동자 계급의 자기 해방을 거부하는가? 타락한 노동자 국가는 도그마이고 국가자본주의는 트로츠키 사상의 본질이란 말인가? 만국의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단결해도 시원찮은 판에 이런 논쟁이 무척 따분하게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만델 타계에 즈음해서 유럽의 좌파들이 엄숙히 조의를 표하는 가운데 국제사회주의를 대표한 존 몰리뉴의 조사(弔辭)는 "그래도 당신과 우리는 다르다" 를 강조하고 있었다.

세 명이 모여서 하나의 '분파' 로 뭉칠 때 트로츠키와 트로츠키주의자의 비원(悲願)은 실천을 향해 한발 성큼 다가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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