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후 금융시장 판도 바꾼 투자은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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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기업이나 국가가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증권시장에서 주식이나 채권을 발행하는 것이다.

전자를 하는 곳이 상업은행(commercial bank)이고 후자를 중개하거나 직접 인수하는 일을 주로 하는 곳이 투자은행(investment bank)이다.

국내에선 은행이 상업은행이고 증권사나 종합금융사가 투자은행에 가깝다.

미국 증권시장이 꽃피기 전인 1970년대 이전의 경우 기업이나 개인이 자금을 조달할 경우 거의 은행 대출에 의존했다.

이 때문에 예금을 받아 대출을 해주고 금리차로 수익원천을 삼는 상업은행이 금융시장을 지배했다. 상업은행은 예금.대출 말고 결제기능도 제공한다.

카드대금이나 공과금을 통장에서 자동으로 빠져나가게 하는 서비스는 상업은행만 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80년대부터 증권시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금융시장 판도도 바뀌었다.

신용도가 높은 기업이나 국가들이 증시에서 주식.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게 은행에서 대출받는 것보다 싸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기업.국가가 주식.채권을 발행할 수 있도록 투자자를 모아주고 때로는 자신이 직접 이런 주식.채권을 사주는 업무(underwriting)를 하는 투자은행들이 급성장했다.

증권시장의 성장은 선물.옵션과 같은 파생금융상품의 발달로 이어졌다. 주식.채권은 값이 급등락하기 때문에 이런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들도 함께 발달한 것.

이 부문도 투자은행이 강하다. 90년대에 들어선 기업 인수.합병(M&A)이 활발해지면서 M&A를 중개하는 것도 투자은행의 주된 업무가 됐다.

투자은행이 금융시장을 석권하자 상업은행들도 80년대부터 자회사나 사업부문 형태로 투자은행업에 진출, 미국에선 순수 상업은행은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상업은행이 수많은 고객을 상대로 박리다매형 영업을 한다면 투자은행은 한 건에 최하 수백만달러짜리 거래를 하기 때문에 웬만한 부장급의 연봉은 1백만달러가 넘는다.

물론 이 정도 연봉을 받기 위해선 적어도 주당 1백시간, 하루 18시간 꼴의 중노동을 감수해야 한다.

정경민.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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