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러기 책동네] '하예린이 꿈꾸는 학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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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아빠가 독일로 출장간 이틀째. 잘 돌아가던 세탁기가 고장이 났다. 재깍 독일로 국제전화를 걸어 SOS를 치는 엄마. 아빠의 답변이 전문가 수준이다.

"세탁기가 몇번에서 멈췄어? 4번은 탈수인데... 그러면 밑에 나사풀고, 호스 마개 열면 엄청 물이 나올거야. 물을 밖으로 보내는 모터 옆에 있는 뚜껑을 왼쪽으로 열면 이물질이 있을거야. 그걸 제거하면 돼. "

이번엔 다른 장면. 모유를 먹여야 하느냐 좌중의 논란이 벌어졌다. 엄마가 모유예찬론을 펼치기도 전에 아빠의 능숙한 경험담이 끼어든다.

"모유 먹일 때는 멀리 나들이 못해요. 젖이 불 때는 캔 음료수를 냉동해서 젖가슴에 문지르면 괜찮아요. "

이쯤 되면 육아만화 '반쪽이' 의 최정현(41)씨를 떠올리는 독자들이 많을 듯 싶다.

최근 출간된 '하예린이 꿈꾸는 학교, 반쪽이가 그린 세상' 에서 그는 '프로 살림꾼' 으로 등장해 부부평등을 실천한다.

딸 하예린의 초등학교 고학년 생활이 곁들여지면서 페미니즘.콘돔 등 아이의 호기심에 진땀을 빼는 '학부형 반쪽이' 의 고민도 추가됐다.

여느 부부처럼 지지고 볶는 일상사야 항다반이지만 이론과 실천을 병행하려는 이들의 노력은 딸 하예린이 시나브로 '생활 속의 평등' 을 배워가는 데 일조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아내인 영화평론가 변재란씨가 창백한 얼굴에 자기 일에만 파묻힌 여성으로 그려지는 점은 옥에 티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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