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클린턴] 上. 끝없는 인기행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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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오는 20일 퇴임한다. 20세기의 마지막 미국 대통령인 그는 역사상 가장 많은 비난을 받으면서도 동시에 가장 높은 지지를 얻어낸 인물이다. 그의 재임 8년의 공과를 짚어보는 시리즈를 2회에 걸쳐 연재한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8년 동안 빌 클린턴 대통령은 미국 정치의 밝은 태양이자 처량한 달이었다" 라고 했다.

경제번영과 르윈스키 스캔들의 명암을 가리킨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평가에선 달빛보다 햇빛 쪽이 두배는 밝다.

갤럽조사에 따르면 1950년대 이후의 대통령 가운데 그는 취임 때(49%)보다 물러날 때(66%)의 지지율이 높은 유일한 대통령이다. 인기가 좋았다는 케네디(76→62%)나, 레이건(57→53%)도 거꾸로였다. 3선을 금지한 헌법만 아니라면 그는 4년 더 백악관에 머무를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그는 3전4기의 오뚝이 대통령이다. 도전과 시련을 기적처럼 헤치고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남자" (지난해 12월 29일 CNN조사)로 우뚝 선 것이다.

위기는 이미 1992년 예비선거 때 시작됐다. 대중지들은 클린턴과 16년간이나 치정관계였다는 나이트클럽 가수 제니퍼 플라워스와의 관계와 월남전 징집을 피하기 위해 그가 기울인 노력을 대서특필했다.

상당수 측근들은 그의 정치생명이 꺼진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는 부인 힐러리 등의 도움을 받아 멋지게 돌파했고 백악관에 입성했다.

두번째 시련은 94년 8월 그가 1년반 동안 심혈을 기울인 의료보장 확대안이 의회의 반대로 좌절된 것이다.

그의 정치적 상처는 깊었고 그해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40년 만에 처음으로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는 사태를 겪어야만 했다.

하지만 클린턴은 쓰러지지 않았다. 그는 직접 민심에 호소하는 방법으로 95년 11월 공화당과의 유명한 예산전쟁에서 승리했고 1년 뒤엔 보란 듯이 재선에 성공했다. 그의 마지막 드라마는 98년 1월에 찾아왔다.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백악관 집무실 섹스 스캔들이 터진 것이다. 적잖은 측근들은 그가 제2의 닉슨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그는 밀리지 않았다. 그는 부인하고 또 부인하면서 일에 몰두했다. 번영으로 치닫고 있는 경제가 결국 그를 살려줬다.

클린턴 대통령은 자기 생애 최대의 정적인 뉴트 깅그리치 전 공화당 하원의장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어렸을 때 우리가 갖고 놀던 오뚝이 인형. 나는 쓰러뜨리면 다시 일어나곤 하는 그 인형을 좋아한다."

클린턴 자신은 오뚝이 신화를 이뤘지만 그것을 앨 고어 부통령과 민주당에 이어주지는 못했다. 공화당은 '백악관의 품위' 를 공격했고 민주당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클린턴의 황음증(荒淫症) 스캔들은 그의 영광만큼이나 역사의 그림자로 남을 것이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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