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예산안 8천억 삭감 신경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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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새해 예산안 삭감 내역을 놓고 벌인 여야의 힘겨루기는 25일 밤 늦게야 결론을 냈다.

한나라당 예결위원들이 이회창(李會昌)총재의 재가를 받아 최종 수정안을 던지면서다. 민주당측은 이런 한나라당의 제안을 지도부에 보고한 뒤 수용했다.

열흘간에 걸친 예산안 줄다리기가 결론나는 순간이었다.

◇ 마지막 빅딜〓25일 오후 6시 예결위원장실. 민주당측에서 장재식(張在植)위원장과 정세균(丁世均)의원, 한나라당측에서 이강두(李康斗)의원과 이한구(李漢久)의원 등 여야 4인이 최종 담판에 들어갔다.

이한구 의원은 "우리가 낼 수 있는 최종안" 이라며 새 협상안을 던졌다.

"우선 남북 협력기금 5천억원을 하나도 깎지 않는 대신 협력기금 사용 때 국회에 보고하도록 하는 단서조항을 달자" 고 요구했다.

이어 ▶특수활동비 70억원▶제2건국위 예산 10억원▶새만금사업 61억원▶호남선 전철화 1백억원을 삭감하고 전주신공항은 정부 원안(50억원)대로 가겠다고 했다.

정세균 간사는 "알았다. 그러나 당 지도부의 최종 재가를 받아야 한다" 며 한나라당에 기다려줄 것을 당부했다. 얼마 후 민주당은 "받아들이겠다" 고 한나라당에 통보했다.

◇ "숨겨진 숫자놀음 삭감안이다" =이에 앞서 25일 새벽 전윤철(田允喆)기획예산처장관이 삭감분(순삭감 8천억원, 항목조정 2조원)에 대한 정부안을 설명했다.

▶국채와 금융 구조조정 비용에 대한 이자 9천억원▶예비비 중 8천2백억원(재해대책 예비비에서 7천억원, 일반예비비에서 1천2백억원)▶지방교부금 중 7백억원▶농업관련 지원액 중 2천7백억원을 삭감하겠다는 내용이였다.

6시간이 넘게 정부안을 기다렸던 한나라당 의원들이 발끈했다. "정치성 예산을 살리기 위해 예비비.이자 등의 금액만 조정한 숫자놀음 삭감안" (李漢久의원)이라고 질책했다. 줄어든 예산은 결국 추가경정예산으로 다시 나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 "차기 대선 싸움 전초전" =정세균 간사는 "한나라당이 유독 호남지역 예산, 또는 남북관계.제2건국위 등 현 정권의 핵심.역점 사업에 소요되는 예산을 손보려 하는 의도가 뭐냐" 고 반발한다.

민주당 의원들은 "긴축 예산을 빌미로 국정 운영에 차질을 빚게 하겠다는 속셈 아니냐" 고 한나라당을 비난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이한구 간사는 "차기 대선을 의식한 여권의 선심성.이벤트성 예산 낭비에 재갈을 물려야 한다" 거나 "현 정권의 재정 적자는 결국 다음 정권의 문제가 될 것" 이라고 주장했다. 국회 관계자도 "여야의 예산 싸움은 2002년 대통령 선거의 전초전 성격이 짙다" 고 평가했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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