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포럼] 노벨상과 당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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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국이 대통령 선거를 끝내고도 40여일 동안 당선자를 못정하고 우왕좌왕하는 동안 가장 돋보인 사람은 빌 클린턴 대통령이었다.

민주당 출신 대통령으로서 이러한 혼란 속에서 같은 당의 앨 고어 후보에게 유리한 언급을 한다든가, 대통령으로서 개입할 여지가 있는지를 모색했을 법도 한데 철저하게 중립을 지켰다.

이러한 그의 중립성 덕분에 새 정부 취임 준비가 비록 늦게 시작됐어도 어느 때보다 모범적인 인수인계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며 클린턴의 초당적 처신에 대한 평가가 높다.

*** 클린턴의 초당적 처신

어느 나라든 대통령이 비록 한 정파의 지원으로 당선됐어도 그 후에는 당을 초월해 국가적 입장에서 처신할 때 훌륭한 대통령 소리를 듣는다.

자기 당 사람만, 자기 파벌만 싸고 도는 대통령은 국민이 신뢰하지 않으며 이에 따라 정통성은 점점 취약해져 가게 마련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건국 초기 스스로가 초당적 인물임을 자부하며 정부를 세웠으나 말기에 들어서는 자유당, 그것도 이기붕이라는 한 파벌에 매여 정치를 함으로써 비극적인 종말을 맞았다. 그는 4.19가 나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그는 난국을 뒤늦게나마 수습하기 위해 우양(友洋) 허정(許政)을 불렀다.

이승만 : 우양 잘 왔네, 어떻게 하면 좋겠나. 허정 : 선생님, 외국에서 처음 돌아오셨을 때 한민당 총재로 취임해 달라니까 일당일파에는 들어서는 안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지금이라도 자유당 총재를 그만두십시오. 이승만 : 이제부터라도 자유당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고 불편부당하게 대통령직에만 전념하겠어.

이승만은 이렇게 뒤늦게 초당적 인물로 돌아가려 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며칠 뒤 그는 하야하고 말았다(허정 저 '우남 이승만' .태극출판사.394~397쪽).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이는 민족적.국가적인 경사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민족적.국가적 지도자가 돼야 하며 그에 합당한 정치가 이뤄져야 한다.

정치는 계속 당파에, 지역에 매여 있으면서 어떻게 민족의 지도자로, 국가적 지도자로 자리매김 받기를 원하는가.

여당 사람들도 이제는 金대통령을 놓아줘야 한다. 사실 정치지도자가 정파를 초월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랫사람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정치지도자의 그늘이 필요하기 때문에 언제나 "그렇게 하면 큰일난다. 당신은 그 순간 모든 것을 잃는다" 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여당 사람들이 진정으로 金대통령을 존경한다면 金대통령이 이제부터라도 큰 정치를 할 수 있도록 자유롭게 풀어줘야 한다.

이러자면 야당의 협조가 필요하다.

사실 단임제 아래에서 정권 후반기에 들어서면 정권을 가진 쪽에서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 챙길 것이 있으면 빨리 챙기자" 며 부정과 비리가 가속화하고 야당은 "여당이 실정(失政)을 하면 할수록 다음 정권은 우리에게 돌아오게 돼 있으니 보고 즐기자" 고 할 가능성이 크다.

그 사이에 골병 드는 것은 국민뿐이다. 따라서 야당도 정권 후반기에는 어떤 식이든 국정에 참여케 만들어 책임을 공유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여당 인사가 "정권을 놓치면 피바람이 불게 될것" 이라고 걱정하는데 무슨 잘못을 그렇게 많이 저질렀기에 지레 겁을 먹는지 알 수 없으나 야당을 참여시킴으로써 이런 피바람을 막을 수 있다.

*** 파벌의 緣 과감히 끊어야

지금 金대통령은 큰 결심을 해야 할 때다. 평생을 파벌정치에 몸담고 그 힘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정치인에게 힘의 원천인 파벌.정파를 무시하고 초당적 정치를 해나가라는 주문은 순진하고 이상적일 수 있다.

그러나 동교동계를 물리친다고 이 돌을 빼서 저 돌을 박은 식의 새 인사 내용으로는 아무에게도 감명을 못준다.

야당 빼가기, 합당 등 술수의 정치로는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당파를 초월한 대통령의 자리로 올라서서 남은 2년을 국가적 시각에서 운영한다면 지난 3년의 자질구레한 실정은 다 덮어지고 정말로 위대한 지도자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2천번째의 성탄절이다. 金대통령은 평생 신앙심을 갖고 살아왔다. 그는 고난의 시절 신앙심으로 위로와 소망을 얻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영광의 시절 신앙심은 무엇으로 나타나야 하는가. 그것은 자기희생과 겸손이다.

문창극 미주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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