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은행구조조정 않겠다는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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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가 과연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건지 않겠다는 건지 도대체 모르겠다.

노사정위가 은행 파업 사태를 해결하겠다면서 금융노조와 합의한 내용이나 한국통신 노사의 합의 내용을 보면 사실상 구조조정을 포기하기로 합의한 꼴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눈앞의 노사 분규만 해결하면 그뿐인지 정책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6개 은행의 파업위협이 시작되자 심야 협상이라면서 합의한 것이 가관이다. 광주.경남.평화.제주 등 4개 은행만 파업을 철회키로 했는데 그 조건을 보면 어이가 없다.

노사정은 2002년 6월까지 4개 은행의 체제와 기능을 사실상 유지키로 했다. 간판은 물론 인력.점포도 그대로 간다.

향후 기능 재편과 인력 감축도 노사 협의에 따라 결정키로 했다.

이는 국민 세금으로 계속 은행원 월급과 점포 관리비까지 대주겠다는 것으로, 구조조정의 포기나 마찬가지다.

여기에 서명한 장관들은 물론 노조가 위협한다고 바로 "합병 논의 중단" 을 선언한 데 이어 계속 끌려다닌 김상훈(金商勳)국민은행장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정부의 약세를 본 국민.주택 두 은행 노조는 합병하지 않겠다는 명시적인 약속을 하라며 파업을 강행하고 있다.

한통도 마찬가지다. 감축 인력을 줄이는 것도 모자라 향후 구조조정은 물론 민영화까지 일일이 노조와 협의해 하겠다는 것은 더 이상 구조조정을 않겠다는 것과 진배없다.

이대로 가면 40조원은 고사하고 훨씬 더 쏟아부어도 개혁은 불가능하다.

차라리 부실 은행들을 자산.부채 인수(P&A)방식으로 정리하는 게 국가 경제에 득이란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현 사태는 원칙을 뒤집고 구조조정을 스스로 포기한 정부에 1차적 책임이 있다. 이런 혼란과 정부 부재 상태는 장관 한두 명 바꾸는 선에서 해결될 단계를 지났다.

자칫하다가는 총체적인 위기 사태를 걱정해야 할 상태에 이르고 있다.

정부는 은행 구조조정 작업을 관철하든지, 아니면 원점에서 구조조정 계획을 다시 짜든지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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