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예산삭감 지루한 줄다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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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22일 오전 10시30분, 국회 예결특위 위원장실.

한나라당측 예산조정소위 대표인 이강두(李康斗)의원이 장재식(張在植.민주당)위원장을 찾았다. 예산안의 삭감폭을 놓고 담판을 짓기 위해서다.

이강두 의원은 "우리 당은 1조원 순삭감에서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다는 게 공식입장이다. 빨리 그쪽 지도부의 결재를 받아와라" 고 최후 통첩을 했다.

이에 張위원장은 "1조원은 말이 안된다" 는 불가 입장을 밝혔고, 협상은 다시 결렬됐다.

이강두 의원은 전날 자민련 정우택(鄭宇澤)의원과 멱살잡이까지 했던 이한구(李漢久)의원 대신 협상창구를 맡은 것.

이한구 의원은 자신이 주도해온 8조원의 예산삭감 주장이 1조원으로 줄어드는 전날 밤의 막후협상에서 배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강두 의원이 나간 직후 張위원장은 민주당 김중권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결위 차원에선 더 이상 할 일이 없다. 오늘(오후 3시) 어차피 이회창 총재를 만나지 않느냐. 그 자리에서 李총재와 논의해 결론을 내달라" 고 요청했다.

이에 앞서 이강두 의원은 이회창 총재를 찾아 "저쪽(민주당)에선 7천억원까지는 양보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고 보고했다.

그러나 李총재는 "1조원에서 조금도 물러날 수 없다" 고 못박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전윤철(田允喆)기획예산처장관은 김중권 대표를 찾아가 "액수보다 중요한 건 시한이다. 제발 좀 빨리 처리해 달라" 고 부탁했다.

◇ 협상 어디까지 왔나〓예산안 순삭감 규모에 대한 여야의 시각차는 일단 3천억원으로 줄었다.

민주당은 전날 밤까지 "마지노선은 4천억원" 이라고 버티다 이날 아침 "7천억원까진 삭감할 수 있다" 는 선으로 물러난 것으로 전해졌다.

줄어든 액수차에도 불구하고 양측이 여전히 신경전을 벌이는 이유는 '조(兆)단위 삭감' (한나라당)이냐, '천억단위 삭감' (민주당)이냐의 명분싸움이 깔려 있다.

오후 3시40분, 한나라당 총재실 앞. 10여분간 단독회동을 마치고 나온 이회창 총재와 김중권 대표의 표정은 개운치 않아 보였다.

"삭감폭을 결정했느냐" 는 기자들의 질문에 李총재는 묵묵부답이었고, 金대표는 "원론적인 얘기만 했다. 총무들끼리 더 얘기해야 한다" 고만 답했다.

◇ 삭감대상〓삭감폭이 결정되지 못함에 따라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논의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새만금간척사업, 전주 신공항사업, 제2건국위 예산, 호남선 전철화사업과 관련한 예산은 '지역편중 예산' 인 만큼 깎고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수호.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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