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조심 사설도청] 도청공포증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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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내 굴지의 대기업 A전자 임원 金모씨는 팩스를 보내는 방법이 조금 특이하다.

보낼 내용을 절대 한꺼번에 전송하지 않고, 시차를 두고 조금씩 나눠 보낸다. 혹 팩스가 도청되더라도 전체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들기 위해서다.

"회사에서 정기적으로 도청 탐지작업을 하곤 있지만 개인적으로 안심이 되지 않는다" 는 게 金씨의 설명.

동종업계에선 선도(先導)기술을 지닌 중소기업 대표 徐모씨. 얼마전 사무실에서 도청기가 발견된 뒤 병적일 정도로 보안에 신경쓰고 있다.

그의 컴퓨터에서는 주변의 도청주파수를 감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항상 작동하고 있다. 10여평의 사무실에 도청주파수가 감지되면 즉시 경보음이 울리도록 한 첨단장비다.

그런가 하면 벤처기업 대표 崔모(38)씨는 아예 30여만원대의 휴대용 도청검색 장비를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회식 자리 등 어디에서도 몸에서 떼어놓지 않을 정도다.

도청에 의한 피해 사례가 늘면서 '도청 포비아(공포증)' 신드롬도 확산하고 있다.

정치인.기업인.연예인 등이 단골손님이다. 이름있는 정치인들은 거의 예외없이 집과 사무실에 도청검색을 하고 있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 얼마 전 모 정당도 주요 당직자 사무실에 대해 도청검색을 했다.

한 보안업체 관계자는 "여성연예인 몰래카메라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톱스타들의 도청.몰카 탐지 의뢰도 부쩍 늘었다" 고 귀띔했다.

'스토킹' 피해가 확산하는 요즘엔 가정주부.여대생 등 일반인 사이에서도 도청 공포에 떠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에 따라 도청검색을 전문으로 하는 보안업체들도 속속 등장해 현재 전국적으로 전문업체는 10여곳. 보안컨설팅을 제공하는 곳까지 합치면 줄잡아 50여개가 성업 중으로, 대부분 설립된 지 2~3년밖에 안 된 신생업체들이다.

007월드 성준기 사장은 "도.감청이 사회문제가 된 지난해 말 이후 하루 3~4건씩 검색의뢰가 꾸준히 들어온다" 며 "인터넷을 통해 도청주파수가 나타나는 지역을 알려주는 유료서비스도 시장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 곧 시작할 예정" 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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