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 집이야기] '순수의 시대' '퍼펙트 머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6면

남이 사는 집을 구경하는 것은 언제나 흥미롭다.

특히 화려하고 장식이 다양한 집을 보는 것은 그런 집에 살아 볼 가능성이 없다고 해도 재미가 각별하다.

그래서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성이나 부호들의 옛 별장을 일정시간 개방해 관광자원으로 이용하는 곳도 흔하다.

'순수의 시대' 와 '퍼펙트 머더' 는 1백여년의 시차를 두고 뉴욕 맨해튼의 상류주택을 구경시켜준다.

1870년대가 배경인 '순수의 시대' 는 당시 뉴욕 부유층들의 사치스런 생활을 의.식.주 모든 측면에서 자세히 보여준다.

1994년 아카데미 의상상을 받은 영화답게 영화 전체가 빅토리아시대 패션쇼를 보는 듯하다. 또 주인공들이 사는 주택도 설계의도부터 설명하는 식으로 묘사되고 있다.

거기에 어떤 음식을 어떤 그릇에 담아 먹는지도 자세히 보여준다.(사진 아래) 빅토리아양식이 유행하던 이 시대는 산업혁명으로 인한 부의 축적을 부유층이 독점해 누렸던 시기다.

이런 시대적인 배경에 걸맞게 빅토리아양식의 특징은 일종의 부의 과시로 볼 수 있다. 벽에는 빽빽하게 그림을 걸고, 정교한 장식물들을 여기저기 늘어 놓았다.

가구도 빨강.초록처럼 강렬하고 화려한 색과 무늬로 만들어졌으며 온갖 장식이 덧붙여져 있다. 식사용 그릇이나 스푼의 세공도 장식이 화려하고 정교하다.

영화에 나오는 그릇이나 스푼세트를 자세히 보면 지금까지 응용되고 있는 디자인들을 여러가지 발견할 수 있다.

고딕 리바이벌, 로코코 리바이벌 등 이전시대에 유행했던 온갖 양식들이 뒤섞인 형태로 나타난 빅토리아양식은 예술사적으로는 냉소적으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그 화려함 자체로 좋은 구경거리가 된다.

한편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한 '퍼펙트 머더' 에는 1백여년을 건너뛰어 거의 같은 수준의 부유층 주택이 나온다.

그러나 주택의 전체적인 분위기나 실내장식은 엄청나게 다르다. 우선 20세기 디자인의 주류를 이룬 모더니즘에 맞추어 단순과 절제미가 특징이다.

장식물도 추상적인 조각품이 한 두 개 놓여있고, 가구는 기능적으로 필요한 책상이나 의자만 갖춰 수가 적다.

색채도 흑백.베이지.회색과 같이 가라앉는 분위기다. 두 영화를 비교해 보면 시대에 따라 크게 달라진 실내디자인의 조류를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두 영화의 공통된 특징은 그렇게 잘 꾸민 집에 살면서도 행복하지 않은 주인공들의 삶이다. 행복한 삶은 화려한 집과는 그리 큰 관련성이 없는 일인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