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감세"에 그린스펀 "글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지난 18일(현지시간) 워싱턴에 도착하자마자 첫 공식 일정을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과의 면담으로 시작했다.

'경제 대통령' 으로 불릴 정도로 경제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미국의 '10년 호황' 을 이끌어 온 그린스펀과의 호흡이 앞으로 미국경제 방향을 잡는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시 당선자는 이날 45분간의 조찬을 겸한 회동에서 자신이 추진하는 조세감면 정책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그린스펀의 이해를 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 사람은 회동 후 대화내용을 함구하고 있으나 블룸버그통신은 "부시는 경제둔화 현상이 현저히 나타나고 있는 만큼 약간의 금리인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고 전했다.

대다수 분석가들은 부시의 대선 경제공약의 핵심인 조세감면 부분을 놓고 가장 큰 이견을 보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부시는 향후 10년간 4조6천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재정흑자분 중 1조3천억달러를 조세감면의 형태로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입장이다.

그는 "미 국민들은 현재 많은 빚을 지고 있다. 따라서 세금 경감은 유동성 확보에 도움을 줄 것" 이라는 주장을 일관되게 펴왔다.

대폭적인 세금 인하를 통해 금융시장으로 민간자금이 흘러가도록 유도, 둔화조짐을 보이고 있는 경기를 돌려놓겠다는 것이다.

그린스펀은 이날 회동 후 부시의 세금감면안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외신들은 "이는 사실상 반대입장을 나타낸 것" 이라고 해석했다.

실제 그는 선거기간 중 줄곧 감세를 통해 "경기를 활성화시키려다 오히려 재정적자를 초래해 경기를 망칠 수 있다" 고 말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재정흑자 기조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며 재정흑자분은 약 3조달러에 달하는 공공 부채를 해소하는 데 우선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흑자가 난나고 해서 부채를 갚는데 쓰지 않고 국민들에게 돌려만 준다면 경기가 과열돼 결국은 FRB가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고, 이 경우 어떠한 재정정책도 수포로 돌아가 오히려 미국이 경기침체기로 진입할 것이란 게 그의 생각이다. 그의 이같은 정책은 월가 전문가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최근 미 경기가 급속도로 둔화하면서 부시의 감세안이 힘을 얻고 있는 것. 월스트리트 저널과 경제전망기관인 WEFA는 최근 "부시의 감세안이 고꾸라지고 있는 경기를 되살리고 증시를 부양시키는 유일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고 전망했다.

때문에 이날 회동에서 구체적인 이야기까지 오가지는 않았겠지만 서로 조금씩 양보하는 선에서 절충안이 논의됐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또 월가에서는 클린턴과 그린스펀 사이에 이견이 생기면 제임스 루빈 전 재무장관이 중간에서 원활히 조정역할을 했던 점을 떠올리며 현재 재무장관 내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의장 후보로 물망에 오르는 로런스 린지 전 FRB이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김현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