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手읽기] DJ 행마 '시선 집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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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오슬로 구상' 은 무엇일까. 개혁은 어디로 가는 것이며 파란 많은 동교동계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세상의 눈이 국정쇄신책을 준비하고 있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쏠리고 있다. 金대통령의 '다음 한수' 에는 저마다의 사활(死活)과 이해관계가 걸려 있어 폭풍전야와도 같은 긴장감이 더해가고 있다.

'다음 한수' 에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 수많은 인사들이 강력한 훈수를 던졌고 암시와 해명, 경고가 잇따랐다.

민주당 정동영(鄭東泳)의원이 권노갑(權魯甲)의원의 2선 후퇴를 金대통령 면전에서 주장하고 나왔다. 김근태 의원과 소장파 모임이 그 뒤를 이었다.

동교동계는 오랜 세월 민주당에선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요석(要石)이자 든든한 세력이었다.

그에 비하면 鄭의원은 화초바둑에 불과한 정치 초년생. 하지만 그의 일합(一合)속에는 급소를 움켜쥐는 섬광과도 같은 번득임이 있었다. 기습 공격을 당한 동교동계는 분노했지만 대통령의 시선을 의식해 태도를 누그러뜨리고 수습에 나섰다.

'양갑(兩甲, 권노갑.한화갑 최고위원)의 암투' 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정권출범 때의 초심(初心)으로 돌아가 대통령을 보필하자고 다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金대통령의 판단은 무엇일까. 동교동계는 이미 권력의 단맛과 파워게임에 침몰해 요석으로서의 효용가치를 상실했을까. 아니면 여전히 소수 여당인 민주당의 충실한 엔진이자 믿을 만한 방패인 것일까.

민주당 내부가 뒤숭숭해지면서 대표의 역할론을 놓고 미묘한 인식 차가 교차했다. 그러자 서영훈(徐英勳)대표가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권한이 없어 실력발휘를 못했던 그간의 고달픔을 하소연하고 나섰다.

그 역시 대통령을 향해 자기 변론과 동시에 뭔가 훈수를 하고 있는 것일까. 침묵에 잠겨있던 김종필(金鍾泌)씨도 오랜만에 기지개를 켜더니 "국회는 자민련이 주도할 것" 이라며 아리송한 한수를 던졌다. 장고 중인 대통령을 겨냥해 자민련이 국회의 맥을 쥐고 있음을 환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훈수는 경고에 가깝다. 그는 金대통령에게 'DJP복원' 등 여당이 소수당의 위치를 벗어나려는 어떠한 임기응변이나 변화수도 응징할 것이라고 말한다.

소수 여당의 한계는 태생적 운명이며 레임덕은 자연 현상이니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이는 게 좋다고 위협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李총재는 현재의 정치구도와 흐름이 만족스럽고 이를 대권으로 연결시키고 싶어한다. 정부와 여당은 축에 몰린듯 꼼짝 못하고 있고 한나라당은 반사이익을 만끽하며 약진하고 있다.

'언론 문건' 같은 위험스런 과수도 이같은 대세의 흐름이라면 가랑잎처럼 휩쓸려 갈 것이다. 세상 인심이란 떠오르는 강자에겐 약한 법이니까.

金대통령은 형세판단을 끝냈을까. 저잣거리의 사람들은 "답답한 가슴 풀어줄 시원한 강수(强手)" 를 원하고 있지만 강수를 던질 기회는 이미 지나가고 말았다는 게 중론이다. 李총재는 "해결책이 없으면 시간을 갖고 더 고민하라" 고 말한다.

물론 "내 손을 잘 잡으면 수(手)가 있다" 는 신호도 보내놓은 상태다.

2000년이 끝나가고 있다. 경제라는 조명은 어두운데 다음 수를 재촉하는 초읽기는 급박하게 뒤를 쫓는다. 묘수(妙手)는 없어 보인다. 변수가 너무 많아 강수도 힘들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수' 가 필요하다고 한다.

사방에서 분출하는 욕심을 진정시키고 어둠 속의 등불처럼 비전을 제시하는 큰 수는 과연 없는 것일까.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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