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선물엔 세상살이가 녹아 있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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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백화점 업계에선 ‘설 선물을 보면 세상살이가 보인다’는 속설이 있다. 업체마다 그때그때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을 설 선물세트로 내놓다 보니, 설 선물이 소비시장 흐름을 반영하는 ‘척도’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신세계유통연구소에 따르면 올 설 선물세트 중 눈에 띄는 것은 막걸리다. 막걸리의 인기를 반영하듯 백화점마다 30종이 넘는 선물세트를 내놓았다. 포장도 업그레이드됐다. 일반적인 페트병 대신 유리병·항아리·도자기 등에 담아 막걸리의 격(格)을 높였다. 올핸 초콜릿 선물세트도 대거 등장했다. 설날과 밸런타인데이(2월 14일)가 겹쳤기 때문이다.

2008년 설에는 천일염과 에스프레소 머신이 선물로 등장했다. 2007년 12월 염관리법 개정으로 천일염이 식품으로 분류되면서 설 선물에 포함된 것. 스타벅스 같은 테이크아웃 커피 브랜드가 인기몰이에 성공하면서 에스프레소 머신도 설 선물에 끼었다.

인기 드라마 속 삶의 모습이 설 선물세트에 그대로 투영되기도 한다. 2007년 설에 등장한 프리미엄 생수 선물세트가 그렇다. 물이 고급 선물세트로 판매된 것은 당시 인기를 끌던 미드(미국 드라마) 덕분이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프리미엄 생수를 마시는 모습이 자주 나오면서 자연스레 이를 찾는 소비자도 늘었다.

2000년과 2003년에는 각각 와인과 올리브유가 선물 카탈로그에 이름을 올렸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어학연수와 유학 등으로 해외에서 생활한 이들이 늘면서 와인을 찾는 이들도 증가했다. 이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할 무렵인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와인 선물세트가 출시됐다. 그러다가 2004년부터는 와인이 양주와 전통주 등을 제치고 주류 부문 명절세트 판매 1위 자리에 올랐다. 2005년부터는 와인잔과 와인 장식장 등 관련 상품도 덩달아 인기를 끌었다.

2003년 설에 선물로 등장한 올리브유 세트는 당시 ‘웰빙 열풍’을 반영한다. 출시 초기에는 주로 식용유·참기름 등 전통적인 조미료 세트에 올리브유가 1~2개씩 끼워져 있다가 몸에 좋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2004년부터는 식용유와 참기름 등을 밀어내고 조미료 부문의 주요 선물세트 자리에 올라섰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과 97년엔 고가의 수입 양주가 명절 선물로 인기를 끌었었다.

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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