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부시 대북정책의 변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35일간 세계의 이목을 워싱턴과 플로리다로 집중시켰던 미국 대통령선거는 결국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후보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선거 결과를 둘러싼 법정 공방이 지속되는 동안 미국 국민들은 미국 사회의 '양극화' 현상을 실감나게 경험했고,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 가 미국 내에도 소득.인종.남녀 구분에 따라 편을 가르고 있다는 점도 깨달았다.

하지만 혼란 속에서도 부시 및 고어 진영의 최전방 요원들과 후방에 있는 유권자 모두 냉정함을 잃지 않음으로써 미국 민주주의의 중후함을 보여주었고, 내년 1월에 취임할 제43대 미국 대통령으로 하여금 민주주의의 토양 위에서 사회통합을 이룩하라는 무거운 책임을 부과했다.

*** 동북아 정세 변화 예고

그러나 우리의 관심은 역시 차기 미 행정부의 대외정책, 특히 한반도 정책 방향에 모아진다.

부시 당선자의 국제정세관은 공화당의 전통적인 외교이념인 '현실주의적 국제주의' , 즉 '힘을 통한 평화' 를 강조하고 이를 위해 군사력과 동맹을 중시하는 외교로 요약된다.

이러한 시각을 그는 '미국적 국제주의(American internationalism)' 로 명명했다. 이러한 미국 중심적인 시각은 부시 후보로 하여금 중국과의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가 아닌 '전략적 경쟁자' 로 규정하도록 만들었다.

아울러 부시 후보는 탄도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포괄적인 국가미사일방위(NMD)체제 구축을 위해 1972년 옛소련과 맺었던 탄도탄요격미사일(ABM)협정을 개정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러한 시각이 그대로 현실화한다면 향후 동북아 정세는 한 차례 곡절을 겪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부시 당선자의 이러한 시각이 대북정책에 얼마만큼 투영될 것인가다. 캠페인 과정에서 공화당과 그의 보좌진을 통해 피력된 입장을 종합해 보면 일방적 대북지원 재고, 중유 및 지원 식량의 전용 가능성 문제제기, 엄격한 상호주의 적용 등으로 요약된다.

특히 공화당은 북한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며, 미국이 '경솔하게' 대북관계 개선에 나서서는 안된다는 '신중론' 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 對北 봉쇄로는 안갈듯

그러나 부시 신행정부는 기존의 대북 '개입' (engagement)정책에 대한 대안으로 대북 '봉쇄' (containment)정책을 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렵게 트인 남북 및 북.미 화해의 물꼬를 무조건 막을 수는 없으며, 대북정책에 관한 한 우방인 한국의 입장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큰 틀에서 부시 행정부가 대북 개입정책을 지속해 갈지 여부는 신정부 출범을 전후해 북한이 얼마만큼 변화의 의지를 보여주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는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함께 진전될 수 있도록 북한에 대해 보다 성의있는 협조를 당부하고 미국 신행정부에 대해 대북 개입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불균형은 곧 한.미관계에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공화당 관계자들에게 화해협력정책 이외에 현실적인 대안이 없고, 한반도 특수상황을 고려할 때 공화당측이 강조하는 '채찍' 이 군사력 사용이어서는 곤란하며, 외교가 아니면 힘이라는 식의 이분법적 논리보다 북한을 국제사회에 의존적으로 만듦으로써 북한이 협조하지 않을 경우 감수해야 할 정치.경제적 비용을 크게 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점을 주지시킬 필요가 있을 것이다.

공화당은 전통적으로 적과 동지를 명확히 구분하는 경향이 있으며, 모호한 수사보다 행동과 책임을 강조하는 정당이다.

딕 체니 부통령 당선자는 과거 국방장관 시절 '우방으로부터는 신뢰를, 적으로부터는 존경심을 얻을 수 있는 대외정책' 을 강조한 바 있다.

공화당 행정부의 선 굵은 원칙과 한국 정부의 지혜와 인내심이 합쳐져 한반도 평화정착을 향한 대장정이 성공적인 결실을 보기를 기대해본다.

김성한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