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동원 일왕등 유죄" 판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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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히로히토(裕仁.사망)일왕과 일본 정부가 유죄임을 밝힌다." 12일 낮 12시 일본군의 군 위안부 관련 전쟁 범죄 책임을 묻는 '여성 국제전범 법정' 이 열린 도쿄(東京) 일본청년관.

가브리엘 맥도널드(여)판사가 판결문을 낭독하자 각국 검사단과 1천여명의 방청객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올렸고 박수 소리는 한동안 끊이지 않았다. 일부 군 위안부들의 얼굴엔 눈물이 흘러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히로히토는 인간의 노예화.고문.살인.인종 차별을 비롯한 인도(人道)에 관한 죄를 범했다' 고 밝혔다.

비록 민간 법정이지만 아시아에서 자행된 전시 성폭력을 둘러싸고 국제관습법으로 정착돼온 인도에 관한 죄가 적용된 것은 처음이다.

재판부는 히로히토의 유죄 근거로 두가지를 들었다. 하나는 '그가 단순한 권력의 꼭두각시가 아니라 육.해군상의 보고를 받고 정책 결정을 내린 최고 통수권자였다' 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당시 문서와 증언에 미뤄 일본군에 의한 '난징(南京)사건' 과 위안소 설치에 대해 그가 몰랐을리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일본의 국가 책임에 대해 '일본군이 여성을 전시 성노예로 동원, 마치 군수물자처럼 취급하면서 고문.강간을 자행한 행위는 당시 일본이 비준.가입했던 인신매매 금지조약.강제노동금지 조약 등 국제법을 위반한 것' 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일본 정부는 전후 위안부 관련 문서를 소각하는 등 사실을 은폐해 왔으며, 국제법의 정의에 비춰 마땅히 져야 할 법적 책임을 회피해 왔다" 며 개인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보였다.

이번 판결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일본 정부의 전시 성폭력 책임을 둘러싼 논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판결과는 별도로 일본 정부의 명확한 사죄와 피해자에 대한 보상, 위안부 관련 정보 공개 및 조사, 위안부에 대한 교과서 기술 등 8개의 권고안을 냈다.

군 위안부 피해자인 문필기 할머니는 "일왕 유죄 판결로 마음의 응어리가 다소 풀린 것 같다" 고 말했다.

이번 법정에서 각국 검사단은 히로히토를 비롯한 25명을 기소했다. 이들에 대한 재판부의 최종 판결문은 내년 3월 8일 국제 여성의 날에 공표된다.

도쿄〓오영환.남윤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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