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풍 사건' 법원 판결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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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법원이 이른바 '총풍(銃風)사건' 재판을 2년 넘게 진행한 끝에 11일 피고인들이 북측에 무력(총격)시위를 요청했다는 검찰의 공소 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국가 안위를 위협하는 중대한 사건' 이란 검찰측 주장과 '국정원의 가혹행위에 의해 만들어진 사건' 이란 변호인측 공방에서 법원이 검찰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법원은 이번 사건을 "목적은 달성되지 않았지만 범행 모의와 실행만으로도 국가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된 사건" 으로 성격을 규정했다.

◇무력시위 요청 여부〓검찰은 피고인들이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였던 이회창 총재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1997년 12월 10일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 아태평화위 관계자에게 '대선 직전 판문점에서 총격시위를 해달라' 는 요청을 했다고 기소했다.

검찰이 李총재의 무력시위 요청사건 연루가능성을 제기하자 한나라당은 변호인단을 구성, 국정원에 의한 피고인들 고문의혹 제기로 맞대응 했었다.

그러나 재판과정에서 한성기씨가 공소사실을 시인하는 '고백서' 를 제출, 사건의 방향이 급선회했다. 검찰은 판문점을 휴전선 부근으로, 총격요청을 무력시위 요청으로 공소장 일부를 변경했고 이를 인정받았다.

◇배후 여부〓재판부는 가장 민감한 부분인 '배후세력' 의 존재여부에 대해서는 판결문에서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간단한 보도자료를 통해 "수사 기록상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고 설명했다. 검찰이 기소하지 않은 내용을 법원이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당시 국정원과 검찰은 '정치권과 연계된 엄청난 국기(國基)문란 행위' 라며 사실상 정치권이 배후세력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했었다. 정치상황에 따라서 이 부분이 언제든지 불씨가 될 가능성이 남아 있다.

◇가혹행위 공방〓재판부는 "변호인 접견이 거부된 5일 동안 작성된 피의자 신문조서는 증거능력이 없다" 고 국정원 수사의 일부 문제점을 제기했다.

하지만 안기부의 가혹행위 여부에 대해서는 "관련 소송이 진행중" 이라며 판단을 하지 않았다.

◇권영해씨 무죄〓權씨에게 적용된 직무유기죄는 유죄 입증이 어렵기로 소문난 죄목. 만약 당시 안기부장이었던 權씨가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이번 사건에 당시 집권세력들이 직간접으로 개입했을 것이란 논리로 비약될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재판부는 權씨가 사건을 보고받은 뒤 보강수사를 지시하고 대선 후 자료도 없애지 않는 등 자신의 책무를 다해 결국 吳씨 등이 구속됐다는 점을 들어 무죄를 선고했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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