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백10조원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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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말 많고 탈 많던 공적자금이 정말 허투루 사용.관리됐음이 본지 시리즈를 통해 드러났다.

보도에 따르면 1백10조원의 공(公)자금 중 절반이 넘는 60조원이 국민 부담으로 귀착된다. 내년 조세 부담률이 20%를 넘어가는 상황에서 향후 수년간 이만한 돈을 국민이 세금 등으로 더 내놓아야 한다.

무엇보다 1백10조원의 사용 과정에서 정부의 무준비성과 무계획성이 드러났다. 1백10조원이 왜 필요한지,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 이 돈을 쓰면 정상화될 수 있을지 등 청사진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공적자금은 조성.운영됐다.

지난 6월 한국.대한투신에 5조원의 돈을 지원할 당시 왜 5조원이 필요한지, 이 정도면 끝날지에 대한 계획이 없었다. 부실 실사와 경영개선 약정서 체결은 지원 후 몇달 뒤에 이뤄지는 등 순서가 완전히 거꾸로였다.

국민 돈이 아닌 내 돈이었다면 이러진 않았을 것이다. 지원 규모.시기가 주먹구구식으로 결정되고, 지원받은 금융기관.기업은 함부로 사용하고, 투입에서 회수까지 감시.감독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에 공적자금 누수는 당연한 결과였다.

1백10조원의 사용 과정에서 누가 책임자인지도 불분명하다. 시스템상 예금보험공사가 실사에서 감시.감독까지 모두 하게 돼 있지만, 아무도 예금보험공사가 실제로 책임있는 기관이라고 믿지 않는다.

금융감독위원회나 재정경제부가 다 처리하지 않았을까 의심가는 대목이 한 둘이 아니다. 게다가 어떤 기준에서 얼마의 돈을 지원했는지 의사 결정 과정에 대한 투명성이 일절 없다.

형식상 최고기구인 예금보험공사 운영위원회와 자산관리공사 경영관리위원회의 회의록이 없거나 있어도 미비하다. 누가 책임자인지가 분명하고 결정과정이 투명해야 제대로 책임을 물을 수 있다.

1백10조원의 값비싼 교훈은 철저히 되새겨야 한다. 제대로 준비하고 사용 과정이 투명하며 책임자가 분명해야 한다. 15일 시작되는 국회 국정조사에 거는 기대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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