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자금] 예보 운영위는 '통과위원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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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 2월 17일 예금보험공사 운영위원회에서 예기치 않은 토론이 벌어졌다.

"우량하다고 할 수 없는 금호생명에 동아생명을 인수시키는 것은 당장의 문제를 피할 뿐 앞으로 문제를 더 크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운영위원 A씨)

"그냥 고객들에게 보험금을 지급하고 청산하는 것이 낫지 않나. " (운영위원 B씨)

그러나 토론은 이내 잦아들었고, 안건은 원안(금호생명이 동아생명을 인수)대로 통과됐다. 사실 이 문제는 이미 금감위에서 얘기가 다 끝난 상태였다.

금감위와 금호생명이 이미 양해각서(MOU)까지 체결해 놓았던 것.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정작 동아생명의 주인인 예보는 완전히 소외됐다. 예보는 지난해 11월 출자를 통해 동아생명을 자회사로 편입했었다.

결국 이날 예보 운영위는 형식적으로 열린 것 뿐이었다. 예보 관계자는 "공적자금 집행과 관련, 지금껏 금감위 요청사항을 예보 운영위가 변경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고 말했다.

자산관리공사도 마찬가지였다. 국제통화기금(IMF)에 자금지원을 요청하겠다는 정부의 전격적인 발표가 나온 직후인 1997년 11월 24일. 자산관리공사(당시엔 성업공사) 경영관리위원회 1차 회의가 열렸다.

위원들은 "중요한 사안은 서면으로 대신할 수 없다" 고 주장했다. 소득이 있었다. 서면결의는 위원장이 사안이 경미하거나 토의가 불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로 제한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후 지난 8월까지 모두 40차례 위원회가 열렸지만 이중 절반인 19번의 회의는 서면결의로 대체됐다.

특히 공적자금과 관련, 자산공사의 가장 중요한 업무인 금융기관 부실채권 매입승인건은 모두 원안대로 가결됐다.

대리출석하는 위원도 있었다. 경영관리위원회의 한 위원은 "공무원 등 일부 위원들은 회의에 부하직원을 대리 출석시킬 정도로 위원회가 제기능을 못하고 있다" 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자산공사 관계자는 "민간 위촉직 세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위원들은 부득이한 사정이 있을 때 소속 공무원이나 소속 임원을 대리로 출석시킬 수 있다는 규정에 따른 것" 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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