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샘] 정부·영화업계 '문예기금' 동상이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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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기획예산처가 문예진흥기금(이하 문예기금)을 2002년부터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예정보다 2년 빨리 없애 국민의 세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이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영화 관람료가 내려갈까. 정부는 국민(영화관객)의 어깨를 가볍게 하겠다고 약속했는데…. 현재로선 그렇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

문예기금 중 극장 입장료 부분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년 평균 70% 이상. 지난해 전체 모금액 2백55억원 가운데 1백80억원이 극장에서 나왔다. 이런 까닭에 영화팬들은 앞으로 사라지는 문예기금 만큼의 입장료 인하되리라고 기대한다.

당국도 그런 점을 내세운다. 기획예산처 관계자는 "향후 폐지할 문예기금 만큼의 인하효과가 나타나도록 행정지도를 하겠다" 고 말했다. 현재 6천원인 영화관람료엔 3백90원의 문예기금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영화업계는 시큰둥하다. 극장.제작측 모두 입장료 인하는 곤란하다고 말한다.

1995년부터 6천원으로 묶여 있는 관람료를 제작비 상승 요인 등으로 7천원으로 인상하려는 마당에 문예기금이 사라진다고 그만큼 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영화 입장료는 신고요금제. 극장측이 시.군.구 등에 신고하는 형식이지만 목욕탕값.자장면값과 같이 서비스 요금으로 분류돼 극장측 마음대로 결정하기엔 한계가 있다.

문예기금에 대해 정부와 영화업계가 동상이몽을 꾸고 있는 것이다. 사실 3백90원은 영화팬 개개인에겐 큰돈이 아니다.

하지만 정부가 공언한 대로 인하효과가 없다면 소비자인 관객으로선 '작은 농락' 을 당하는 꼴이 되지 않을까. 설혹 없어질 문예기금만큼 우리 영화의 질을 향상하는 쪽으로 영화계 스스로 길을 모색한다면 모르지만…. 당장 영화진흥위원회와 영상자료원은 문예기금 조기폐지에 따른 지원축소를 걱정하고 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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