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무소 주민자치센터화 지지부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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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5일 오전 서울 성동구 마장동 '동민의 집' 2층.

'차밍 웰니스' 교실에 참석한 30여명의 주부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경쾌한 음악에 맞춰 에어로빅에 열중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동장실이 있었던 한쪽 공간은 탁아방으로 변해 주부들을 따라온 아이들이 놀고 있다.

지난해 7월 성동구가 정부의 '동(洞)기능전환 사업' 의 시범구로 선정되면서 달라진 동사무소 풍경이다.

수강생 강명옥(姜明玉.41)씨는 "운동을 하고 싶었지만 헬스센터나 백화점 문화교실 등은 적잖은 수강료 때문에 부담이 되던 차에 '동민의 집' 무료 프로그램이 생겨 즐겁게 이용하고 있다" 고 자랑했다.

현재 성동구 내 20개 동민의 집에서는 컴퓨터.헬스.취미 등 3백여 강좌가 마련돼 1만여명의 주민이 참여하는 등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민 중 姜씨처럼 혜택을 누리는 경우는 아직 많지 않다. 계획대로라면 11월말로 끝났어야 할 서울시의 '동사무소 기능전환 사업' 이 일부 구청과 공무원들의 소극적인 자세때문에 목표의 20%도 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지부진한 실적= '동 기능전환 사업' 은 동사무소 기능 중 증명서 발급 등 기본적인 것을 빼고는 모두 구청으로 넘기고, 남은 동사무소 공간은 회의실.문화교실.헬스시설 등을 갖춘 '주민자치센터' 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주민들은 스스로 자치위원회를 구성해 프로그램 선정 등 동 단위의 각종 문제를 결정하게 된다.

서울시는 행정자치부 지침에 따라 지난 11월말까지 시내 5백22개 동사무소에 대해 이 사업을 마무리할 계획이었으나 현재까지 시설공사가 완료된 곳은 1백1개 동에 불과하다.

자치센터 설립의 전단계라고 할 수 있는 자치위원회 구성이 완료된 곳도 2백38개동에 그치고 있다.

시 관계자는 "현재 시설변경 공사를 하고 있는 곳이 많아 올 연말까지는 전체 동의 70% 이상이 기능전환을 마무리할 것" 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시간에 쫓겨 내실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 소극적인 공무원=사업 차질의 가장 큰 이유로는 공무원들의 소극적인 자세가 꼽히고 있다. 동기능 축소로 자리를 뺏기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실제 16~18명씩이던 일선 동의 직원 수는 평균 5~6명씩 줄었다.

이들은 구청으로 자리를 옮기지만, 가뜩이나 구조조정 압력에 시달리고 있는 구청으로 가는 게 좋을리 없다.

주민자치센터 설치에 노골적으로 반발하며 서울시 및 행자부와 마찰을 빚고 있는 강남구는 "이미 충분한 주민복지시설이 있고, 필요할 경우 시설을 추가하면 되는 만큼 동기능을 구로 옮겨 주민불편을 초래할 필요가 없다" 고 버티고 있다.

부자동네 강남구와는 달리 재정자립도가 낮은 구청에서는 '돈문제' 를 호소한다. 국가와 시의 지원을 받아 자치센터를 마련하더라도 운영비 마련에 어려움이 많다는 것.

◇이름만 '자치' 될라=이미 주민자치센터로 바뀌어 문화센터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동사무소에서도 '자치' 는 아직 자리잡지 못한 듯하다.

단적인 예가 자치위원회의 구성. 동장이 자치위원을 위촉하게 돼 있는 데다 주민들의 참여의식 부족으로 바르게살기협의회.새마을운동협의회 같은 관변단체 인사들로 채워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 위원회 구성이 완료된 서울시내 2백38개 동의 자치위원 4천5백여명 중 각종 직능단체와 비영리단체 인사, 구의원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어 주민자치와는 거리가 있다.

주민들도 자치센터를 단순히 '공짜로 취미활동을 즐길 수 있는 곳'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풀뿌리 민주주의 촉진' 이란 사업의 근본 목적을 되새겨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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