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시론

지금 북한에 필요한 조치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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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북한의 화폐개혁은 처음부터 자충수였다. 북한은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에 따라 지난 7년 반 동안 이루어진 화폐경제를 크게 얕잡아 보았다. 정치권력 한 방이면 모두 다시 원점으로 되돌려 놓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전혀 논리적 근거가 없는 해괴한 화폐개혁을 단행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주민 생활에 내려앉은 시장질서는 이를 거부했다. 시장은 인위적인 통제를 거부한다. 인간의 근본적 속성을 반영하고 있는 시장이 북한 주민의 삶을 책임지지 못했던 당국을 대신해 힘을 키워 반격을 시작했던 것이다.

북한 경제가 당면한 부작용은 기본적으로 유통상의 문제다. 재화의 유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살인적 초인플레는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을 반영한다. 이는 화폐에 대한 주민의 불신 때문이다. 발행된 화폐와 정책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재화가 거래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생필품이 유통되지 못하는 결과는 더욱더 큰 궁핍과 기아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북한 당국이 시장거래를 중단시킨 것은 불난 집에 부채질한 꼴이나 마찬가지였다.

북한에 지금 당장 필요한 조치는 무엇일까? 먼저 비록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근본을 훼손한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당장 정권이 망하는 것이 아니라면 주민들의 거래를 대폭적으로 허용해야 한다. 물물거래와 화폐거래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한편, 가격지도를 통해 물가의 폭등을 억제해야 한다. 또 교환하지 못한 구권을 병행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신권과의 환율을 일정하게 유지시켜 나가야 한다. 이를 통해 재화가 거래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해서 화폐에 대한 믿음이 축적될 때 거래가 확대될 수 있다. 재화의 내부 조달의 어려움을 외부(해외)로부터 극복할 수 있는 조치를 단행하는 것도 필요하다. 생필품 가격을 안정시킬 수 있는 최선책은 해외로부터 공급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식량을 비롯한 생필품 수입에 가용할 수 있는 외화를 총동원하고, 해외 원조와 투자를 획득하는 데 진력해야 한다. 무엇보다 점진적 체제개혁에 나서야 한다. 서비스 분야의 자영업을 확대·인정하는 조치를 취하면서 사유재산재의 범위를 넓혀야 할 것이다.

이런 사정으로 북한은 남한이 요구하는 방법을 수용해서라도 현금 확보의 중요한 통로가 되는 금강산 및 개성 관광 재개와 3통 문제 해결을 담보로 하는 개성공단 활성화에 응할 가능성이 크다. 이를 현실화할 수 있도록 하는 정부의 전략적 지혜가 요구된다.

김영윤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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