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임승천 '초설(初雪)'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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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둥근 원을

처음 도는 사람

꽃잎을 가득 뿌리고

마음을 덮는다

작은 내 눈 속

가득한 고요

깨어지지 않는 창으로

고향이 내린다

지금쯤

또 다른 마을로

새들이 날아가고

수많은 이야기가 쌓인다

거기

내가 숨쉬는 동안

넓은 마음의 광장에서

즐거운 시간의 매듭을 푼다

-임승천(49) '초설(初雪)'

서울은 아직 눈소식이 없다. 손톱 끝의 봉숭아물은 다 지워지는데, 강아지랑 뛰놀던 어린 날이 아니더라도 첫눈은 마음 한쪽에 붙어 있는 그리움이고 늘 평화로운 고향의 산과 들이다.

하얗게 지워지는 신작로 길, 면사포를 쓰고 수줍게 고개 숙이는 뒷동산의 소나무들.

필통에 잠자던 연필을 꺼내 누구에겐가 안부를 묻고 싶은 그런 첫눈 오는 날…. 어서 내려라 첫눈이여.

이근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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