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욱 대기자의 경제 패트롤] 도요타 리콜과 ‘갈라파고스 경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일본 도요타자동차 리콜 사태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달 21일 미국에서의 리콜 발표와 8개 차종의 판매 중단 사태는 이제 일본 국내에서 판매된 친환경차 프리우스에까지 불똥이 튀고 있다. 언급을 자제해오던 일본 언론들이 도요타의 둔감한 대응을 비판하고 나섰고 일본 정부도 도요타가 ‘고객 관점이 결여되어 있다’고 질타했다. 그동안 힘들여 쌓아 올린 신뢰는 곳곳에 흠이 가고 있다.

품질에 대한 신뢰는 일본 제조업을 떠받쳐온 기둥이었다. 적어도 1980년대 이후 일본의 자동차·가전·철강 등 주요 제조업 분야에서 일본의 철저한 품질관리는 ‘메이드 인 재팬’에 대한 전 세계적인 믿음으로 이어졌다. ‘경제동물’이란 소리도 들었지만 품질과 품질관리 방식에는 혀를 내둘렀다. ‘갈라파고스 경제’라는 비아냥을 살 정도로 폐쇄적인 일본 시장도 맹목적 애국심이 아니라 자국 제품에 대한 철저한 신뢰-남의 것은 왠지 그만 못한 듯한 느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일본인에 대한 조크 한마디. 한 미국 회사가 일본과 러시아 부품공장에 물건을 발주했다. 조건은 ‘불량률은 1000개에 1개 수준’. 며칠 후 러시아에서 너무 힘들다며 납기를 늦춰달라는 메일이 왔다. 며칠 후 일본에서도 메일이 날아왔다. ‘납기에 맞춰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 중. 다만 불량품용 설계도를 아직 받지 못했음. 조속히 보내줄 것’.

내친김에 하나 더. 옛 소련 시절 한 공장에서 있었던 얘기다. 늘 업무 시작 10분 후에 나타난 한 남자가 KGB에 체포됐다. 죄목은 ‘태만’. 늘 10분 전에 나타났던 동료도 체포됐다. 죄목은 ‘서방 측 스파이’. 어느 날, 항상 시간에 딱 맞춰 나타나던 사람이 체포됐다. 죄목은 ‘일제 시계를 갖고 있는 게 틀림없다’(『세계의 일본인 조크집』 하야사카 다카시, 주오코론신샤). 기술과 품질은 외국인이 일본을 보는 첫 번째 창(窓)이었고, 일본 국민에겐 자부심의 원천이었다. 그런 일본에서 이번 일이 터진 것이다.

도요타 사태는 이제 시작이다. 어떻게 번질지 예단하기 어렵다. 물론 적잖은 타격을 줄 것이란 점은 분명하지만 도요타가 그동안 숱한 도전을 이겨내면서 세계 1위 자리에 오른 것을 잊어선 안 된다. 한국 자동차업계의 반사이익을 기대하는 얘기도 있다. 단기적으로 그럴 수 있지만, 그건 말리(末利)다.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을 배우느냐다. 이번 도요타 사태를 발생 원인부터 앞으로의 수습과정까지 하나하나 뜯어보고 분석하며 뭘 얻고 뭘 버리느냐를 찾아내야 한다. 실패의 교훈, 극복의 교훈 다 중요하다. 그게 타산지석을 통해 얻는 진정한 이익이다.

박태욱 대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