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금감원의 뒷북치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불과 1년 사이에 세번씩이나 똑같은 불법대출이 적발된 회사가 어떻게 지금껏 버젓이 영업을 할 수 있었습니까. 그런 줄도 모르고 어렵게 모은 돈을 예금한 사람만 바보가 된 느낌입니다. "

'정현준 게이트' 의 복사판인 서울 소재 열린금고 불법대출 사건이 보도된 24일 이 금고 고객이라고 밝힌 독자가 분통을 떠뜨리며 한 말이다.

사실 불법대출이 두번째 적발된 올해 3월에라도 이 금고를 영업정지시키고 고객 돈을 빼돌린 대주주를 처벌했다면 MCI코리아 진승현 사장의 불법 머니게임 행각을 사전에 막거나, 최소한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에 대해 금감원 김중회 비은행검사1국장은 "현행 금고법 제24조와 시행령에 따르면 출자자 대출을 받은 대주주가 대출금을 검사기간 중에 갚아버리면 영업정지를 내릴 수 없게 돼 있다" 며 "과거 두차례 모두 검사기간 중 대출금을 갚아 대표이사와 감사 등만 징계할 수밖에 없었다" 고 해명했다.

그러나 금고업계에선 이같은 규정은 진작에 고쳐낼杵?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금고업계 관계자는 "금감원 검사에서 불법대출이 적발돼도 사채업자나 다른 금고에서 급전을 빌려다 일단 메운 뒤 검사반이 철수하면 다시 출자자 대출을 일으켜 급전을 갚으면 그만" 이라며 "어차피 대표이사나 감사는 대주주의 들러리일 뿐이기 때문에 이들을 징계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고 꼬집었다.

더욱이 금고는 전국에 1백60여개나 되는데 이를 감시할 감독원 인력은 20명 안팎이다. 이 때문에 전국에서 매일 일어나는 수많은 불법.탈법 대출을 일일이 잡아내기란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번 불법대출이 적발되면 '일벌백계(一罰百戒)' 로 따끔하게 처벌해 금고 대주주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줄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번 사건이 터지자 금감원은 서둘러 "일부 금고 대주주들이 법령의 허점을 악용하는 사례가 잇따라 똑같은 불법대출이 세차례 적발되면 바로 영업정지시키는 '삼진아웃제' 를 검토하고 있다" 며 발표하고 나섰다. 하지만 뒤늦은 규정 개정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 이어서 뒷맛이 개운치 않다.

정경민 경제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