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학] 사장 자리 박차고 소설가 된 홍상화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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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한때 그는 명예 대신 부를 추구하는 길을 생각해 보았었다. 하지만 부의 추구란, 일단 성공하면 불신과 의혹과 계량화만 존재하는 불모의 땅에 갇히게 되고 그것들이 영혼을 좀먹게 한다." 최근 첫번째 내놓은 소설집 '능바우 가는 길' (문이당.8천원)속에 나오는 위같은 부분처럼 소설가 홍상화(60.사진)씨는 부(富)를 추구하던 기업인이었다.

1974년 한국컴퓨터를 창업, 7백여명의 직원을 거느린 탄탄한 기업으로 키운 홍씨는 87년 사장직을 내놓았다.

"내일부터 소설을 쓰겠다" 며 자신이 '나라 세우듯 일군' 회사를 떠났다.

47세의 늦은 나이에 소설세계로 들어온 홍씨는 잇따라 장편 '피와 불' '거품시대' '사랑은 길을 잃지 않는다' 등을 내놓으며 봇물 터지듯 창작 의욕을 과시하다 이번에는 정련된 단편 8편을 모아 소설집을 펴낸 것이다.

"사업을 하다 보면 갖가지 거짓과 비굴에 직면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 어쩌면 거짓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예술.문학은 인생살이에서 부득이 겪어야 할 애환까지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다고 믿어왔습니다.

문학에 대한 이러한 믿음이 이제 불모의 삶은 그만두고 처절하게 외롭고 자살에 이르기까지 고통스럽더라도 창작의 길을 택하게 만들었습니다. "

홍씨의 지나온 삶과 문학에 대한 이러한 믿음은 이번 소설집 여러 곳에서도 잘 드러난다.

'독수리 발톱이 남긴 자국' 은 해직 기자로, 부도난 사업가로 미국으로 이민와 다시 사업을 일으키며 힘들게 살고 있는 두 친구의 삶을 다루고 있다.

리커스토어를 경영하다 난관에 부닥친 한 친구의 다음과 같은 기도문에 홍씨의 사회관은 잘 나타난다.

"한국사회는 죄를 지으며 살아남든지, 아니면 당장 생계유지에 급급한 생활을 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게 했습니다.

저는 죄를 지었습니다. 누구나 그러했으니까요. 사회의 지도층을 이루는 관료와 사업가, 그리고 정치인들…. 누구나 죄를 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죄를 짓고 있다고 느낄 능력이 없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주지 않고 일한 만큼만 챙기는 정직한 사회를 작중 주인공들은 꿈꾼다. 그 순수한 사회에 살기 위해 주인공들은 미국으로 떠났으나 홍씨는 소설세계로 들어온 것이다.

그런 홍씨가 꿈꾸는 소설세계는 표제작 '능바우 가는 길' 에서 엿볼수 있다. 지난 20여년간 소설만 써오며 계산적으로만 돌아가는 세태에 염증을 느낀 이진우는 아프리카 오지에서 자신을 송두리째 바쳐가며 의료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의사를 만나러 간다.

경비행기를 타고가며 오염되지 않은 자연과 어울려 욕심없이 사는 부족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어릴적 고향의 때묻지 않은 사람들을 소설화하리라며 비행기를 타고가다 계곡에 추락해 들어간다.

아무리 고독하고 죽음에 이르게 할지라도 소설을 통해 순수를 보여주겠다는 홍씨의 소설을 향한 순교적 자세를 드러낸 작품으로 읽힌다.

환갑을 맞이했으면서도 홍씨는 "문단에 늦게 나와 마흔살도 되지않은 것 같다" 며 "이제 비로소 소설이 무엇인지 보이기 시작하니 더욱 철저하고 열심히 창작에 임하겠다" 고 했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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