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총재 "정부 실정 오히려 더 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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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우리 당이 있는 그대로를 다 얘기하고 문제 삼으면 국민이 충격을 받을까 걱정이 돼 말을 아낄 정도" 라는 말을 자주 한다고 한다.

그만큼 李총재가 현 상황에 대해 느끼는 위기의 강도는 심각하다고 측근들은 22일 전하고 있다.

李총재는 이런 총체적 위기가 김대중 대통령 주변의 언로(言路)가 막힌 데서 비롯됐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李총재는 지난달 9일 영수회담 이후 줄곧 "대통령이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다" 고 말하고 있다.

그는 최근 한 고위 당직자에게 "대통령이 제대로 보고를 받았다면 이렇게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 이라며 "(金대통령은)가신집단의 맹목적인 충성심에 둘러싸여 있다" 는 지적을 했다고 한다.

李총재는 이처럼 정국파행의 책임이 여권에 있음을 강조하면서 당내비주류 일각의 '조기등원론' 제기 등으로 정국주도권이 훼손되는 것을 막으려 하는 인상이다.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고강도 사정' 에 대해서도 李총재는 "김대중 대통령의 잘못된 상황 인식에서 나온 잘못된 처방" 이라며 "오히려 여론의 역풍을 맞을 것" 으로 전망했다고 한 측근은 전했다.

문제를 정면으로 풀기보다 야당과 비판세력을 겁주는 방식으로 해결하겠다는 '안이한 자세' 라고 지적했다는 것이다.

그는 "李총재가 정부의 잇따른 실정을 오히려 부담스러워 한다" 고 주장하며 "李총재는 '어찌됐든 이 정부가 남은 2년6개월을 무사히 가줘야 한다' 고 말하고 있다" 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이같은 실정(失政) 걱정은 야권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굳히겠다는 李총재의 전략과도 맞물려 있다" 고 설명했다.

이수호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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