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미국 대선 무엇이 문제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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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이번 미국 대선은 우리에게 미국의 선거제도와 정치체제 전반을 점검하고 되돌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된다. 이번 대선으로 미국의 정치체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번에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선거인단제도다. 고어가 일반투표에서 부시에게 이기고도 선거인단제도로 인해 아직 승패를 가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뉴스위크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57%대 33%로 선거인단제도를 폐지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선거인단제도는 연방정부체제의 존립을 가능케 하는 중요한 제도로서 나름대로 존재이유가 있다.

흔히 이 제도를 건국 초기에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않은 상태에서 누가 대통령 후보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아 지역 유지들을 선거인으로 뽑은 데서 유래했다고 이해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더 큰 이유가 있다. 선거인단제도는 미국이 연방으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생겨난, 연방제도의 산물인 것이다.

아메리카의 13개 식민지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해 생겨난 처음의 미국은, 각각의 헌법과 그에 따라 구성된 정부를 지닌 13개 나라들(오늘날의 주)이 모여서 이룩한 국가연합이었다. 13개 나라는 엄연히 주권을 지니고 있었고 몇몇 나라 사이에는 관세까지 존재했다.

그러다 보니 이 연합은 독립전쟁을 수행하는데 어려움을 겪었고, 전후에 미국의 외교와 경제는 곤경에 빠졌다.

그래서 강력한 중앙정부의 필요성을 인식한 정치지도자들이 각 나라의 대표들로 구성된 회의를 개최했고, 여기서 연방헌법이 제정됐다.

이 과정에서 큰 나라와 작은 나라, 남부와 북부 나라 사이에 이해관계가 엇갈렸다. 나라간의 대립이 가장 첨예했던 것은 입법부 구성문제였다.

회의에 상정된 안은 상.하원 모두 인구비례로 구성할 것을 제안했으나 작은 나라들은 이에 결단코 반대했다.

연합에서는 모든 나라가 한표를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하원은 나라별 인구비례로 구성하며, 상원은 모든 나라가 똑같이 2명의 의원을 선출하기로 한 대타협을 통해 해결됐다. 결국 하원은 인민을 대표하고 상원은 각 나라를 대표하게 된 것이다.

주의 고유한 권한을 잃지 않으면서도 활력있는 중앙정부를 만들어내기 위해 고심하던 대표들은 대타협을 통해 인민과 주, 둘 다를 대표하는 '연방' 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발견했다.

그리하여 이들은 헌법 제정을 통해 국가연합과 단일국가 사이의 중도(中道)인 연방국가를 만들어냈다.

따라서 미국의 모든 정치제도에 연방적 요소가 존재한다. 대통령 선거도 예외가 아니다. 11월 7일에 있었던 일반선거는 인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선거고, 12월에 있을 선거인단의 투표는 주의 의사를 반영하는 것이다. 주의 선거인단 수가 그 주의 하원의원 수+상원의원 수인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선거인단제도가 폐지되면 '다수 인민에 의한 정부' 를 이룩할 수 있을지 모르나, 2백년 넘게 유지된 미국의 연방제도도 같이 무너질 위험이 따른다. 그러므로 '다수 인민에 의한 정부' 를 지나치게 고집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인민의 직접적인 의사를 고스란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선거인단제도보다 상원이 더 심하다. 알래스카나 캘리포니아나 똑같이 2명의 상원의원을 선출한다.

하지만 누구도 상원을 폐지하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연방제도는 존중되고 유지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입장은 일반선거에서 부시보다 더 많이 득표한 고어에게서도 볼 수 있다. 선거인단제도의 희생자지만 제도 자체를 문제삼지는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선제도를 개선하는 바람직한 방향은 선거인단제도 전체가 아니라 그 일부인 승자독식(winner-take-all)방식을 폐지하는 데 있다.

주의 선거인단 표 전체를 그 주의 승자에게 몰아주는 승자독식의 방식은 헌법제정 당시에는 없던 제도로, 19세기에 정당의 발달과 더불어 도입됐다.

선거인단제도가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게 된 것은 이 승자독식방식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 보듯 유권자 득표에서 앞서고도 확보한 선거인단 수에서 뒤짐으로써, 결국은 소수파 대통령의 탄생을 가져올 수도 있으므로 이 방식은 폐지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정경희 <탐라대 교수. 미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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