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수검표 인정" 판결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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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플로리다주 대법원의 21일(현지시간) 결정으로 미 대선의 운명은 일단 26일(현지시간) 또는 27일 오전까지의 '재개표 싸움' 에 매달리게 됐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민주.공화 양 당간의 보다 치열한 백악관 다툼으로 치달을 개연성도 크다.

만약 앨 고어 민주당 후보가 패배한다면 그는 여론의 압력에 따라 물러날 가능성이 크다. 그는 이날 밤 기자회견에서 "내가 전국 득표는 높았지만 플로리다에서 지면 승복하겠다" 고 공언했다.

반면 그가 승리하면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 진영은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다. 부시와 공화당은 주 대법원 판사의 당적(6명 민주당, 1명 무소속)을 들어 판결을 "당파적(partisan)" 인 것으로 규정해버렸다. 중립적이지 않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를 비롯한 언론은 22일 공화당측이 연방 대법원이나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주 의회, 심지어 연방 의회까지를 총동원해 주 대법원의 결정을 뒤집고 백악관을 차지하려는 전략을 검토 중이라고 일제히 보도했다.

맘?수(手)검표의 유효표 인정 기준을 둘러싸고 추가 소송전이 벌어지거나 3개 카운티의 수검표를 주 정부가 접수는 하되 당선자 확정을 미뤄 12월 12일의 시한까지 주가 선거인단 25명을 정하지 못하면 선거인단을 주 의회가 뽑도록 돼 있는 규정을 공화당이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극한적인 경우에는 12월 18일 선거인단 투표에서 고어가 당선돼도 내년 1월 6일 열리는 연방 상.하원 합동회의가 이를 인정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도 공화당이 추진할 수 있다.

판결은 내려졌지만 이처럼 대선 전망은 여전히 짙은 먹구름에 가려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든 주 대법원의 결정은 선거사에 역사적인 것으로 기록될 것이다.

법원 결정의 핵심은 유권자의 투표권을 광범위하게 인정한 것이다.

법원은 42쪽에 달하는 결정문에서 수검표.재검표를 둘러싸고 상충하는 주법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리고는 "법원은 선거법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명심해야 한다.

법은 대의제 민주주의에 있어 각 유권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그들의 의지를 보호하고 촉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 이라고 설명했다.

투표권은 법률적 충돌을 뛰어넘는 기본권이며, 따라서 정확한 재검표를 통해 유권자들의 진정한 뜻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어 사람의 손으로 하는 개표작업이 기계보다 실수가 많다는 부시측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법원은 "우리 사회는 아직 기계를 맹목적으로 신뢰하지 않고 있으며 선거를 포함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인간은 기계의 실수를 교정하고 있다" 고 밝힌 것이다.

대법원의 결정은 결국 고어측이 지금까지 주장하던 내용을 거의 수용한 것이다.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 등 주요 언론들이 수작업 재검표 결과를 무시할 수 없다고 주장해온 점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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