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을 읽는다] 내각에서 은행 장악…탄력성 저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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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북한에서는 발권은행인 조선중앙은행이 여.수신 업무도 취급한다. 중앙은행에 의한 단일은행제가 운영되고 있지만 중앙은행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역.외환업무를 담당하는 무역은행, 경제특구 나진.선봉시 투자를 담당하는 '황금의 삼각주은행' 등이 중앙은행의 기능을 보완하고 있다. 내각에 소속된 이 은행들은 중앙은행의 감독을 받는다.

북한사회의 특성을 반영하는 특수은행도 있는데 예를 들어 당 경제정책검열부 소속의 금강은행, 당 39호실 소속의 대성은행.금별은행, 제2경제위원회(군수산업 담당) 소속의 창광신용은행 등이 대표적이다.

북한경제가 민간부문과 당(黨).군(軍)경제로 엄격히 구분돼 있음이 은행조직에서도 분명히 나타난다.

그밖에 외국자본과의 합작은행으로 고려상업은행(재미동포 합작).조선합영은행(조총련 합작).화려은행(중국 합작) 등이 있다.

다만 서방 금융기관과 합작한 ING동북아은행.페러그린 대성은행 등은 현재 영업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에서는 우리와 달리 은행의 통제력이 강하다. 예산의 수입.지출, 기관.기업소에 대한 자금공급 등이 모두 중앙은행 단일계좌를 통해서만 결제하도록 돼 있다.

화폐유통을 이원화하고 있는 점도 특이하다. 기관.기업소에는 은행계좌를 통해 결제하도록 함으로써 현금유통을 철저히 규제하는 반면 주민들 사이, 주민과 기관.기업소 사이에선 현금유통을 허용한다.

한편 은행이 대출을 통해 이자수입을 올리는 것은 엄격히 금지된다. '자본주의적 착취' 로 보기 때문이다. 다만 기관.기업소에서 일시적으로 현금이 부족할 때는 최소 이자만 받고 대출해주기도 하지만 이 경우에도 철저히 무담보를 원칙으로 한다.

북한에서 경제난 이전에는 은행제도의 문제점이 그다지 드러나지 않았다. 경제난으로 계획경제 기능이 약화되자 주민들은 은행을 이용하기보다 현금을 개인적으로 보유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로 인해 화폐유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지만 은행쪽에서 별다른 대비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또 현재의 은행제도로는 화폐가치가 지속적으로 하락할 경우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

북한은 앞으로 대외경제 관계를 확대해감에 따라 은행 기능을 다양화할 필요성을 느끼게 될 것이며, 이것이 북한경제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될 것이다.

북한의 금융산업 낙후가 남북경협에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남북한 합작은행을 설립하는 것을 적극 검토할 때다.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북한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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