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후 학교 학생 1인당 1만원 달라” 대놓고 뇌물 요구한 초등학교 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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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방과후 학교 위탁업체로 선정해 주는 대가로 업체 대표에게서 뇌물을 받은 초등학교 교장들이 검찰에 적발됐다.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는 서울 광진구 모 초등학교 교장 김모(60)씨 등 서울 지역 전·현직 초등학교장 5명을 뇌물수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3일 밝혔다. 이들에게 정기적으로 금품을 제공한 혐의(뇌물공여)로 위탁업체 A사 대표 이모(58)씨도 불구속 기소됐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2003년 4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A사가 방과후 학교 영어·컴퓨터 교실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해 주고 각각 3∼16차례에 걸쳐 700만∼2000만원을 받았다.

검찰 관계자는 “일부 교장은 방과후 학교 수업을 듣는 학생 한 명당 1만원씩 계산해 뇌물을 요구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학생들이 낸 수업료는 과목당 약 10만원. 수업료의 10%를 교장이 챙긴 셈이다.

이들은 갖가지 방법으로 업체에 뇌물을 강요한 것으로 확인됐다. ▶방과후 학교를 폐쇄하겠다고 위협하거나 ▶수강생 모집공고를 미뤄 업체들이 선정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에 떨게 하거나 ▶강사들을 수업과 무관한 사항을 트집 잡아 괴롭히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는 “업체 입장에선 뇌물을 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뇌물을 강요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A사가 5명의 교장에게 건넨 뇌물은 모두 6700만원. 모두 현금으로 교장 집무실에서 건넨 것으로 확인됐다. 업체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받는 수강료나 교재비를 올렸다. 교장이 받은 뇌물이 결국 학생들의 부담으로 돌아간 것이다.

방과후 학교는 교육과학기술부가 2004년부터 추진해 온 사교육비 경감 대책이다. 특히 비싼 돈을 내고 학원에 다니거나 과외를 받을 형편이 안 되는 학생들이 주로 방과후 학교를 이용했다. 비교적 적은 금액으로 학원 수업을 받는 효과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교육과학기술부 지침에 의하면 방과후 학교는 학교가 직접 운영할 수도 있고, 교육업체에 위탁할 수도 있다. 위탁할 경우 업체 입찰을 거쳐 학부모로 구성된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받도록 돼 있다. 하지만 사실상 학교장의 뜻에 따라 업체 선정이 좌우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 관계자는 “교장이 마음대로 업체를 정한 뒤 일방적으로 통보했다”며 “운영위원회는 실태를 잘 몰라 항의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현재 서울시 268개 초등학교가 49개 업체에 위탁해 방과후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수업을 듣는 학생은 7만691명에 이른다. 교육청은 수사 결과를 통보 받는 대로 관련자를 중징계할 방침이다. 교육청 관계자는 “중징계란 해임·파면 조치를 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대인 장학관은 “학교에 뇌물을 주는 업체도 적발 즉시 ‘부정당 업체’로 지정해 방과후 학교 참여를 원천적으로 금지하겠다”고 말했다.

김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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