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만에 뒤집힌 여야 합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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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

15일 오후 7시 국회 귀빈식당에서 저녁을 들고 있던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는 민주당이 김용갑(金容甲)의원에 대한 징계(제명)동의안을 국회 의안과에 제출했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李총재는 "여야 총무가 국회를 정상화하기로 합의한 상황에서 믿을 수 없는 일" 이라며 함께 있던 정창화(鄭昌和)총무에게 사실 확인을 지시했다.

李총재는 "사실이라면 묵과할 수 없다" 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양당 총무는 오후 5시30분 국회 정상화에 합의했다.

▶金의원의 문제 발언(민주당은 조선노동당 2중대)속기록 삭제▶정창화 총무가 金의원을 대신해 언론에 유감 표명을 하는 조건으로 합의한 것.

그리고 정창화 총무가 유감 표명을 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냐" 는 게 정창화 총무의 얘기였다.

즉각 민주당 정균환(鄭均桓)총무에게 전화를 걸었다.

"징계안이라니 무슨 소리냐. 합의문의 잉크도 마르지 않았다." (정창화 총무)

"우리 내부의 일이다. 金의원이 직접 사과하기로 한 것은 아니므로 징계안을 낸 것이다." (정균환 총무)

정창화 총무는 정균환 총무에게 즉각 철회를 요구했다. 그러나 정균환 총무는 "징계안 제출은 정당하다" 고 버텼다.

정창화 총무는 본관 146호에서 열리고 있던 한나라당 의원총회장으로 급히 달려갔다. 그리고 "민주당이 국회 정상화 합의를 깨뜨렸다.

징계안이 철회되지 않으면 국회 본회의에 참석하지 않겠다" 고 말했다.

그러자 의석에서는 "뒤통수를 맞았다" "(총무가 김용갑 의원 발언과 관련해 민주당에) 사과할 필요도 없다" 는 등 격앙된 발언들이 튀어나왔다.

의총 뒤 한나라당 권철현(權哲賢)대변인은 "민주당이 국민 앞에 한 약속을 헌신짝 던지듯이 저버린 것은 국회를 파행으로 몰고가려는 치졸한 음모" 라며 "즉각 징계안을 철회하라" 고 요구했다.

비슷한 시각 민주당도 원내 대책회의를 열었다.

정균환 총무는 "金의원 징계는 국회 정상화 합의와는 별개 문제로 우리 당 의원들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것" 이라고 강조했다.

정균환 총무는 "국정 운영을 위해 정상화에 합의했지만 金의원 발언에 면죄부를 준 것은 아니다" 며 "한나라당의 반발을 이해할 수 없다" 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만섭(李萬燮)국회의장과 여야 총무간 3자 회동에서도 우리는 독자적인 징계 의사를 밝힌 바 있다" 고 덧붙였다.

천정배(千正培)수석부총무는 "한나라당도 우리 당 이원성(李源性)의원 등에 대해 일방적으로 징계안을 내지 않았느냐" 며 "한나라당이 국회에 들어오지 않으면 우리당만이라도 본회의 속개를 강행할 것" 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은 오후 9시쯤 의총을 열어 한나라당의 징계안 철회 요구를 묵살했다.

의총에선 "한나라당이 본회의에 불참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은 국회를 다시 파행으로 몰고가 그 책임을 여당에 전가하기 위한 술책" 이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민주당은 자민련과 함께 본회의를 열기로 했다.

이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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