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수작업 개표' 왜 논란 벌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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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플로리다주에서 공화당 조지 W 부시 후보와 민주당 앨 고어 후보의 표차이는 고무줄이었다.

최초 개표 결과는 1천7백84표로 부시의 승리. 그런데 재검표를 하니 표차가 3백27표로 줄었다. 세번째로 팜비치 지역에서 다시 손으로 일일이 확인하니까 고어의 표가 다시 19표 늘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는 건 컴퓨터의 인식 한계 때문이다.

컴퓨터는 기표 구멍이 확실히 뚫려있지 않으면 무조건 무효를 선언한다. 하지만 검표원들은 '구멍을 뚫으려고 한 의지' 가 있으면 유효로 본다.

컴퓨터는 또 구멍이 났어도 종이가 달라붙어 있으면 무효라는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사람이 검표를 하면 이런건 당연히 유효다.

펀치카드식 투표 중 무효표의 상당 부분은 고령자들 것이었다. 기표 구멍이 너무 촘촘히 붙어 있는데다 작은 철필로 구멍을 뚫도록 돼 있어 시력이 나쁘고 손목에 기운이 없는 노인들은 실수하기가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팜비치 카운티 전체의 무효표 비율은 7%인데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밀집한 지역에서는 10%가 무효표였다. 하지만 노인들은 고어를 선호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모든 걸 고려하면 수작업으로 재개표하면 부시표보다 고어표가 더 많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확률적으로는 컴퓨터 대신 사람이 재검표하면 플로리다 4개주에서만 수천표의 차이가 날 수 있다.

부시측은 "컴퓨터가 더 정확하다. 수작업은 인간의 실수와 개표원의 주관적 판단이 문제가 될 수 있다" 며 마이애미 법원에 소송을 냈다.

담당 판사는 빌 클린턴 대통령이 임명한 도널드 미들브룩스 판사다. 플로리다 전체 투표수는 약 6백만표며 이중 수작업 개표가 쟁점인 4개 카운티의 투표수는 1백70만이다.

이중 1백6만여표가 고어를 지지했으며 무효표는 8만여표였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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