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이 주인되자] 7. 더불어 사는 아파트…지저분한 공용공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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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을 들어서면 깨끗하고 정돈된 실내. 그러나 문 밖으로 나서면 지저분한 통로.엘리베이터.화단 주변.현관 문을 경계로 펼쳐지는 아파트의 전혀 다른 두 모습이다.

우유 배달원 金모(34.여.경기도 의정부시 금오동)씨는 K아파트가 지겹다.

새벽 배달에 나서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면 입구의 쓰레기 수거대에서 풍기는 악취에 코를 싸맨다. 수거대 주변의 검은 봉투 틈으로 액체가 흘러나온다.

병.플라스틱 등으로 구분해 놓은 재활용품 분리수거대 주변에는 갖가지 쓰레기가 널려 있다.

아파트의 계단과 계단 사이 공간은 김칫독, 낡은 의자, 쓰다 버린 화분이 점령하고 있어 이를 피해 올라가기도 쉽지 않다.

金씨는 "그러나 우유값을 받으러 들어가 보면 너무나도 깨끗한 실내에 혹시 다른 아파트에 온 것이 아닌가 잠시 어리둥절해진다" 고 말했다.

5층짜리 이 아파트 단지는 외벽도 얼룩덜룩하고 베란다도 흉물스럽다. 바깥으로 지지대를 설치해 빨래를 내거는가 하면 화초가 말라 비틀어진 화분도 보인다.

인근 단독주택가의 李모(36.주부)씨는 "국도에서 빤히 보이는 대단위 아파트가 흉물스러워 동네 전체가 슬럼가로 여겨지고 이미지도 나빠져 집값에도 영향을 준다" 고 했다.

건축된 지 5년 가량 된 제법 깨끗한 의정부 시내 15층짜리 S아파트. 그러나 이 아파트도 각 층의 계단 손잡이에는 자전거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계단 사이 공간에는 폐지.빈 박스 등 재활용 쓰레기가 쌓여 있다.

옥상으로 통하는 입구 주변에는 쓰다 남은 건자재와 부서진 책상이 쌓여 있다.

주민 朴모(47.회사원)씨는 "반상회를 통해 자기 집 주변 정리를 호소하지만 소용이 없다" 고 말했다. 모든 아파트의 관리비에는 상당액의 청소비와 오물수거비가 포함돼 있다. 이 중 일부는 입주민들이 손수 나서면 줄일 수 있는 비용이다.

일본에서는 10여년 전부터 아파트 사랑방 모임이 활성화됐다. 주민들이 스스로 주변 환경의 질을 높이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며 해결책을 찾는다.

모임은 정년 퇴직자와 주부들이 주도해 복도와 계단 가꾸기.건물 색칠 등 공동의 주거환경을 보다 깨끗하고 질서 정연하게 만든다. 깨끗한 환경에서 고운 심성이 배양된다는 차원에서 시민운동의 형태로 펼쳐지고 있다.

의정부시 B아파트 부녀회는 주변 환경도 깨끗이 하면서 돈도 버는 길을 찾았다.

10평 규모의 재활용품 수거 장소에 비를 피할 수 있도록 천막을 설치하고, 주민 대표와 주부들이 번갈아 정돈한다.

판매 수익금으로 일반 쓰레기 보관용 플라스틱 박스를 사놓고 정기적으로 이웃의 양로원 등을 돕는다. 음식물 쓰레기 수거대는 공용 수도전 옆에 설치, 자주 세척해 악취 공해를 없앴다.

자연생태연구소마당 유창희(柳彰熙.38)소장은 "베란다 화분대를 이용해 아파트 전체를 꽃동산으로 꾸미는 등 주민들이 공동활동에 나서면 삶의 질도 높이고 아파트의 가치도 향상시킬 수 있다" 고 강조했다.

전익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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