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우 노조가 남긴 최악의 선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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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노조가 구조조정 동의서 제출을 거부함으로써 대우자동차가 끝내 부도 처리됐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노조 입장에서 3천5백여명의 감원을 의미하는 동의서를 수용하기 힘들었다 해도 부도까지 불사한 결정은 국민으로선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설마 부도야 내겠느냐' 는 생각이었다면, 아직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그릇된 판단이다.

회사가 이 지경에 이른 데는 김우중 전 회장 등 대우 경영진과 정부.채권단의 책임이 물론 크다.

기업은 넘어가는데 노조에 '5년간 고용보장' 을 약속한 경영자가 있었으니 대우 회생은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게다가 갈팡질팡하며 매각 실패를 자초해놓고 막판에 '동의서 내라' 고 노조를 몰아붙인 정부.채권단의 전략도 떳떳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모든 점을 감안하더라도 끝까지 구조조정 동의를 거부함으로써 회사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간 최종 책임은 노조측에 있다.

대우차에는 1만9천여명의 임직원이 있으며, 1만개 가까운 협력.하청업체에는 무려 60만명이 종사하고 있다.

대우차 부도는 또 ㈜대우 등 다른 계열사들의 자구노력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나라경제 전반에 걸쳐 엄청난 충격을 준다.

노조는 이런 모든 것을 희생하고서라도 3천5백여명의 일자리를 지키는 게 더 중요했단 말인가. 작은 이익을 붙잡고 늘어지다가 기어이 기업 전체, 나아가 국가경제 전체를 흔들 위기를 조성한 것이다.

대우차는 차입금 11조원에 매출이 부진해 상반기에만 1조원의 순손실을 냈고, 이 구멍은 사실상 국민 세금으로 메워 연명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대우차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조기 매각밖에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노사가 합심해 경영을 개선, 회사 가치를 높여 해외매각하고 자신들의 일자리를 확보하는 게 노조로선 현명한 선택이었다.

이젠 노조 스스로 그 길마저 막아버렸다. 우리가 안타까워하는 일은 바로 이 점이다. 나라경제가 경각에 처한 현 시점에서 부실기업의 퇴출과 감량경영은 필수적인 수순임에도 불구하고 대우사태는 최악의 선례를 남긴 것이다. 부실기업들이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할 교훈이다.

이제 당면과제는 대우차 부도의 파장을 최소화하는 길이다. 정부는 대우차가 원래 워크아웃 상태라 큰 충격은 없다지만 당장 대우차 가동이 중단되고 하청업체들이 연쇄 도산을 맞을 위기에 처해 있다.

만일 법정관리로 가 대우차의 채권.채무가 동결되면 채권은행들도 심각한 어려움에 처하고, 이는 다른 분야에까지 연쇄적으로 파급을 미칠 게 뻔하다.

이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하는 한편 어떤 형태로든 회사를 되살려 보다 나은 조건으로 매각하는 차선책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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