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독일의 11월 9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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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20세기 들어 독일은 유난히 큰 일을 많이 치렀다. 1, 2차 세계대전과 독일 통일만으로도 현대사의 절반은 쓰고도 남는다.

그래선지 독일엔 유난히 무슨무슨 기념일이 많다. 기념일이라고 해서 꼭 좋은 것만 기억하는 날은 아니다. 과거의 잘못을 다시는 반복하지 말자는 참회의 기념일도 많다. 이 가운데 11월 9일만큼 독일 역사에 뚜렷하게 각인된 날도 없다.

주지하듯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전세계에 TV로 생중계된 그날의 장관(壯觀)은 11년이 지난 오늘도 눈에 생생하다.

장벽을 부수고 서로 부둥켜안은 독일인들은 20세기 후반 가장 극적이고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이듬해 10월 3일 독일이 통일되지만 동.서독 주민은 이미 이 때 하나가 됐다. 이 때문에 통일 기념일을 11월 9일로 바꾸자는 주장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독일의 11월 9일이 이처럼 기쁨과 감동만을 준 것은 아니다. 1938년 11월 9일, 이미 반쯤 미쳐 날뛰던 나치정권은 이날 밤 전독일의 유대인 교회와 상점.주택에 불을 지르고 3만명의 유대인을 체포했다. 4백여명은 현장에서 무자비하게 살해했다.

이른바 이 '수정의 밤' 사건으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나치는 이후 아우슈비츠에 이르기까지 무려 6백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한다.

나치와 11월 9일의 얄궂은 만남은 이게 처음이 아니다. 15년 전인 1923년 이날 히틀러는 뮌헨의 뷔르거브로이켈러란 맥주집에서 쿠데타를 일으킨다.

'뮌헨폭동' 혹은 '맥주홀폭동' 으로 불리는 이 사건으로 체포된 히틀러는 옥중에서 자신의 궤변을 담은 '나의 투쟁' 을 집필한다.

이 책에서 히틀러는 "강자의 승리와 약자의 절멸(絶滅)은 뒤집을 수 없는 진리" 라고 말해 벌써 이 때부터 유대인 학살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1918년 11월 9일은 노동자들이 11월 혁명을 일으켜 빌헬름 2세를 퇴위시키고 제2제국을 무너뜨리면서 하루 8시간 노동제 등을 쟁취, 독일 노동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날이다.

이처럼 20세기 독일 역사의 절목(節目)마다 등장하는 11월 9일에 대한 독일인들의 감회는 남다르다. 마침 올 11월 9일 베를린에서는 대통령과 총리까지 참석하는 거국적 반 극우파 데모가 벌어진다.

베를린 장벽 붕괴의 환희보다 나치에 대한 반성으로 이날을 느끼려는 그들에게서 독일의 희망을 읽는다.

유재식 베를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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