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 경제] 부도가 뭔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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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부도.도산.청산.파산.폐업.퇴출…

요즘 신문이나 TV를 보면 '어느 기업이 망했다' '부도를 냈다' 는 뉴스가 많이 나오지요. 청산.폐업 등은 뜻은 좀 다르지만 모두 '기업 사망' 에 관한 용어입니다.

부도는 어음이나 당좌수표를 제때 갚지 못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은행에서 받은 대출금을 못 갚을 때는 연체라고 부르며 부도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부도가 난다고 곧 기업이 망하거나(도산)없어지는 것(청산 또는 폐업)은 아니지요. 물론 부도가 나면 신용을 잃게 되고 은행과 거래도 못하게 돼 도산할 가능성이 높기는 합니다.

오늘은 이 부도에 대해 알아볼까요.

우리가 보통 물건을 살 때는 현금이나 신용카드를 쓰지만 기업끼리 물건을 사고 팔 때는 대부분 어음이나 당좌수표를 씁니다. 어음과 당좌수표는 상대방에게 일정 금액을 언제까지 갚겠다고 약속한 문서입니다.

기업이 어음이나 당좌수표를 사용하려면 우선 은행에 당좌예금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은행은 기업의 신용도를 감안해서 당좌거래를 허가하면서 어음.수표 용지를 나눠줍니다. 기업은 필요한 물건을 산 뒤 현금대신 어음이나 수표를 주지요.

먼저 정상적으로 이뤄지는 거래에 관한 그림을 함께 볼까요.

무역업체가 가전제품 제조업체한테 물건을 사 외국에 수출한다고 합시다. 이 때 보통 현금 대신 어음을 주고 물건을 사죠. 제조업체는 이 어음으로 협력업체에서 원자재나 부품을 살 수 있어요. 어음은 이렇게 기업 사이에서 현금처럼 돌아다닙니다.

이 어음을 갖고 있는 기업은 어음을 발행한 기업이 돈을 갚겠다고 어음에 표시한 날짜(만기)가 됐을 때 자기가 거래하는 은행에 찾아가서 어음을 현금으로 바꿔 달라고 요청하면 됩니다. 이것을 전문 용어로 '교환의뢰' 라고 하죠.

그러면 이 어음을 받은 거래은행(제시 은행)은 처음 어음을 발행한 무역업체가 거래하는 은행(지급 은행)에 어음을 건네주고 어음에 적힌 금액만큼 돈을 받은 뒤 그 돈을 협력업체의 예금계좌에 넣어 줍니다.

이때 전국의 은행마다 자기네들끼리 어음을 일일이 교환하려면 무척 복잡하겠지요. 그래서 은행들은 어음교환소라는 곳을 만들어 이 곳을 통해 매일 어음을 바꾸고 있습니다. 이런 어음교환소는 현재 전국 곳곳에 51개소가 있어요.

당좌수표는 어음보다 더 현금에 가깝습니다. 어음은 만기일이란 게 있어서 그 날이 되기 전에는 은행에서 현금으로 바꿔주지 않아요. 그러나 당좌수표는 받은 당일에도 은행에 가면 현금을 내줍니다. 만기가 따로 없이 언제든지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지요.

자, 이제 이런 어음과 당좌수표가 어떻게 부도가 나는지 알아보죠. 상대방 은행에서 어음을 받은 은행은 어음을 발행한 무역업체의 당좌예금 계좌에서 어음액 만큼을 빼어서 상대방 은행에 줍니다.

그런데 이 계좌에 돈이 없으면 문제가 생기죠. 은행은 기업에 어음 대금을 입금하라고 독촉합니다. 은행 영업시간이 끝날 때까지 입금을 못하면 지급은행은 일단 이 기업을 부도 처리합니다. 이를 1차 부도라고 합니다.

1차 부도를 낸 기업이 다음날 은행이 문 닫을 때까지 돈을 넣지 못하면 이 기업은 최종 부도 처리되고 어음교환소는 모든 은행에 '이 기업은 부도를 냈다' 고 통보합니다.

이 때부터 이 기업은 모든 은행과 당좌거래는 물론 대출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이튿날 돈을 넣었더라도 1년에 1차 부도를 4번 내면 4번째에는 다음날까지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최종 부도처리 됩니다. 이것이 부도의 가장 흔한 경우죠.

그러나 부도는 이밖에도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때로는 발행기업이 어음을 막을 돈은 있지만 지급을 거절하기도 합니다. 물건을 받기로 하고 어음을 발행했는데 물건이 도착하지 않아 못주겠다고 거절하는 경우이지요.

또 분실.도난.위조.변조된 어음이나 어음에 반드시 찍혀야 할 인감 도장 등이 빠진 불완전한 어음의 경우에도 지급이 중지됩니다. 이런 경우엔 그 원인을 해소하면 부도 처분을 취소시킬 수 있어 도산과는 거리가 멀지요.

예를 하나 더 들어볼까요.

태평물산은 11월 27일을 만기로 하는 5천만원 짜리 약속어음을 거래처로부터 받았습니다. 마침 협력업체에 5천만원을 주어야 했던 태평물산은 받을 돈 5천만원을 믿고 만기를 11월 29일로 한 어음을 끊어주었습니다.

그런데 27일이 되자 거래처가 돌연 부도를 냈습니다. 다급해진 태평물산은 자력으로 우선 29일 만기가 돌아오는 5천만원을 막기 위해 급전을 빌리러 나섰지만 실패했습니다. 12월 5일이 되면 다른 거래처로부터 1억원을 받을 수 있는 어음이 있지만 이 때는 너무 늦지요. 이 바람에 이 회사는 부도가 나버렸습니다.

아무리 흑자를 내고 장사를 잘 해도 이처럼 갑작스레 부도를 맞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를 흑자 부도라고 합니다. 또 거래처의 부도로 인해 덩달아 부도가 난 경우여서 연쇄부도라고도 하지요.

민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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