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바로보자] '반짝쇼' 자정선언 이제 그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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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대형 사건.사고가 터질 때마다 정부 관계부처들은 공직자 '자정선언' 을 내놓는다. 그러나 그때뿐 자정선언 후 또다른 사고 발생이란 악순환이 이어져 불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임직원들은 30일 결의대회를 열고 "직무와 관련해 어떠한 향응과 선물도 받지 않으며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수 있는 일체의 유가증권 거래를 하지 않겠다" 고 다짐했다.

동방.대신금고 불법 대출 사건에서 금감원 간부들이 깊숙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어서다. 그러나 금감원의 자정선언을 보는 국민의 시선은 차갑다.

국세청은 북인천세무서 직원들의 세금 감면을 둘러싼 조직적인 비리가 무더기로 적발된 후인 1997년 1월 강도높은 자정선언을 했다.

그러나 불과 1년여 뒤 이석희(李碩熙)전 차장이 관련된 이른바 '세풍(稅風)사건' 이 터지자 "외압에 흔들리지 말자" 는 다짐을 또 한차례 해야 했다.

자정선언은 묘하게도 검찰.경찰과 금감원 등 '칼' 을 가진 기관에서 자주 나온다. 권력과 돈이 그만큼 유착하기 쉽다는 얘기다.

서울경찰청은 98년 3월 총경급 이상 간부 70여명과 일선 경찰서 경위급 이상 간부 2천5백명, 교통경찰관 등으로부터 '업무와 관련된 돈은 절대로 받지 않겠다' 는 각서를 받았다. 그렇지만 경찰과 관련된 독직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대전 법조 비리 사건 때인 99년 2월 전국의 평검사 대표 59명은 10시간의 마라톤 회의 끝에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검찰이 되도록 노력하자" 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 후 검찰이 달라졌다고 믿는 국민은 별로 없다.

서울대 서이종(徐二鍾.사회학)교수는 "자정선언이 여론의 비난을 모면하려는 자기방어용으로 이용되기 때문에 불신을 가속하고 있다" 며 "의식과 관행.제도의 실질적 혁신이 요청된다" 고 지적했다.

김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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