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 라마 왜 한국 못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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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달라이 라마의 한국 방문이 쉽지 않은 것은 중국의 막강한 영향력 때문이다.

달라이 라마의 방한을 추진해온 방한준비위(이하 준비위)가 그를 '종교지도자' 로 본다면 중국 정부는 '반체제 정치지도자' 로 간주한다.

사실 달라이 라마는 두 가지 성격을 모두 지니고 있다. 그는 티베트의 종교지도자인 동시에 정치지도자다. 중국이 공산화한 이후 망명정부를 이끌고 있기에 중국 정부 입장에서 보면 분열주의자.반체제 인사다. 따라서 달라이 라마의 방한과 같은 국제활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같이 불투명한 전망에도 불구하고 불교지도자들뿐 아니라 김수환(金壽煥)추기경과 강원용(姜元龍)목사 등 다른 종교지도자들까지 나서 방한을 추진해온 것은 그가 표방해온 평화와 화해의 이미지, 그리고 정부의 긍정적인 입장 때문이다.

지난 6월 이정빈(李廷彬)외교통상부장관은 국회의원 모임에서 "10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이후 방한을 허용하겠다" 고 밝히기도 했다.

이 무렵 준비위는 방한이 가능하다고 판단, 초청대표단을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의 다람살라에 보내는 등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8월에는 달라이 라마가 보낸 특사가 입국해 金추기경.姜목사 등 교계 지도자들과 만나고 방한일정을 11월 16일로 확정했다.

방한이 본격 추진되자 지난 9월 8일 우다웨이(武大偉)주한 중국대사가 직접 나서 "방한이 허용되면 단교(斷交)까지는 안 가더라도 상당한 영향이 있을 것" 이라고 경고하는 등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외교부가 '연내 방한 불가' 를 준비위에 간접적으로 전한 것은 9월 초. 준비위는 당장 '중국의 문화주권 침해' 라며 서명운동에 돌입하는 등 반발하고 나섰다.

그러면서도 10월 말을 기다려왔다.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이 확정되고, ASEM이 끝나기 때문이다. ASEM에 주룽지(朱鎔基)중국 총리가 참석한다는 것이 달라이 라마의 방한을 허용하지 않는 명분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또 金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게 되면 같은 평화상 수상자인 달라이 라마의 방한을 전격 수용할지 모른다는 기대에서였다.

그러나 정부는 '불가' 를 최종 확인했다. 준비위는 내년 재추진을 다짐하고 있지만 성사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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