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잠수함 생존자 있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6, 7, 8번 격실에 있던 모든 승무원들은 9번 격실로 옮겼다. 지금 여기(9번 격실)에 23명이 모여 있다. 사고가 나는 바람에 이곳으로 온 것이다. 우리들 중 아무도 수면 위로 올라갈 수 없다. 나는 지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막막한 심정으로 이 글을 쓴다."

러시아 해군 중위 D R 콜례스니코프는 8월 12일 노르웨이 북부 바렌츠해에서 폭발사고로 승무원 1백18명과 함께 수심 1백8m의 바닥에 가라앉은 핵 잠수함 쿠르스크호에서 절망에 가득찬 채 이같은 메모를 썼다.

25, 26일 러시아와 노르웨이 잠수부들이 쿠르스크호에서 건져올린 네구의 승무원 시신 중 하나인 콜례스니코프의 옷에서 폭발사고 직후 최소한 23명의 승무원이 생존해 있었음을 알려주는 이 메모가 발견됐다고 영국 BBC방송이 26일 보도했다.

방송은 이에 따라 러시아 당국은 희생자 가족.친지들과 언론으로부터 쿠르스크호가 침몰했을 때 적절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국제적인 구조노력을 지연했다는 비난에 다시 직면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 메모는 두번의 폭발이 일어난 것으로 알려진 쿠르스크호에서 첫 폭발로 상당수의 승무원들이 몰살한 직후 최소한 23명은 살아있었으며 이들은 폭발사고가 나자 잠수함 후미에 있는 8번 격실로 대피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콜례스니코프의 시신은 러시아 해군과 러시아 당국으로부터 시신 인양을 의뢰받은 노르웨이의 잠수부들이 25, 26일 잠수함 후미의 8, 9번 격실에서 발견해 특수 컨테이너로 인양지휘선인 레갈리아호로 운구한 네구의 시신 중 하나였다.

BBC는 이 메모는 사고 원인을 알려주지는 않았지만 첫 폭발사고 후에도 살아남은 승무원이 있었으며 이들은 나중에 익사하거나 체온저하.고압 등으로 서서히 숨졌을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사고 이후 러시아 해군의 일부 관계자들은 쿠르스크호가 침몰한 첫날 잠수함에서 뭔가를 두드리는 소리가 감지됐다는 보도를 인용하며 일부 승무원이 생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러시아와 서방의 다른 관계자들은 이 보도가 근거없다고 무시했으며 뭔가를 두드리는 듯한 소리는 쿠르스크호가 해저에 가라앉거나 잠수함 부품이 부서지면서 난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시신 인양 작업은 넷째 시신을 옮긴 직후 초속 18m의 강풍이 부는 바람에 일시 중단됐으나 시신이 더 인양돼 침몰 직후의 상황을 알려주는 정보가 추가로 발견될 경우 러시아 국민의 분노가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고 BBC는 전망했다.

채인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