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금융위기 상황 국내 불똥 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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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0면

'동남아의 금융위기가 북상(北上)하는 것은 아닌가' .

필리핀.태국 등 동남아 국가들이 외환위기 재발 조짐과 함께 주식값이 크게 떨어져 가뜩이나 불안한 국내 증시에 걱정을 더해주고 있다.

필리핀 페소화의 가치는 25일 사상 최저치인 달러당 49.6페소까지 폭락, 1997년말 외환위기 때보다 떨어졌다. 주가도 급락해 마닐라종합지수는 연초 대비 60% 이상 하락했다.

사정은 인근 태국도 비슷해 바트화 가치는 이날 98년 6월 이후 최저를 기록했고, 방콕종합지수는 연초 대비 45% 떨어졌다.

이들 두 나라에선 최근 외국자본이 계속 이탈하고 있다. 대만의 경우 외환시장은 안정돼 있지만 주식시장의 하락속도는 동남아 국가들과 비슷하다.

◇ 다른 점과 같은 점=현 상황에서 동남아의 위기상황이 우리 시장에까지 파급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ING베어링증권 윤경희 서울지점장은 "동남아시장 위기가 주로 정치불안에서 비롯됐다" 며 "한국시장이 직접적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고 말했다.

필리핀은 에스트라다 대통령이 뇌물수수 혐의로 의회의 탄핵소추를 받아 정치가 극도의 혼미상태에 빠졌고, 태국도 선거를 앞두고 정치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尹지점장은 "대만과 한국도 주식값이 급락했지만, 이는 미국의 정보통신(IT)관련 기술주들이 떨어진 것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동남아 주가폭락과는 성격이 다르다" 고 설명했다.

그러나 비슷한 측면도 있다. 금융.기업 구조조정이 지연되면서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전광우 국제금융센터 소장은 "우리가 상대적으로 나을 따름이지 구조조정이 부진하다는 지적은 계속되고 있다" 고 밝혔다.

◇ 구조조정으로 차별성 보여야〓그래도 외국인들은 한국이 결국 동남아 국가들과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란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모건스탠리 등 일부 외국계 증권사들은 최근 한국과 대만 시장에 대해 주식투자 비중의 확대를 권고했다. 대신 동남아에 대한 비중은 축소했다.

윤경희 지점장은 "외국인들은 구조조정의 가닥이 잡히고 미국 증시가 안정되면 한국의 주가가 다시 상승세를 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며 "확실한 구조조정으로 동남아와 차별성을 부각시켜야 한다" 고 강조했다.

전광우 소장도 "우리 스스로를 위해서도 구조조정을 잘 마무리해 경제의 체질을 강화해야 한다" 고 밝혔다.

김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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