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준 게이트' 3대 의문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금융감독원 직원들에게 돈과 주식을 뇌물로 주었다는 정현준(鄭炫埈)한국디지탈라인(KDL)사장의 폭로 파문이 확산하고 있다.

검찰이 鄭사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데 이어 금융감독원도 장내찬 국장 외에 다른 직원들의 뇌물수수 여부에 대해 자체조사에 나섰다. 국회의 국정감사장이나 관련 업계에서 제기되는 핵심 의혹은 세갈래다.

◇ 4백억원 어디갔나=금융감독원 조사 결과 鄭사장은 자신이 대주주로 있던 동방금고(서울)와 대신금고(인천)로부터 불법 대출한 자금규모가 5백14억원이지만 이중 4백억원은 鄭사장 계좌에 입금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鄭사장은 이중 상당부분을 이경자 동방금고 부회장이 빼돌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신이 직접 대출받은 것은 40억원 뿐이며, 나머지는 이씨가 자신의 이름을 도용해 대출했다는 것이다.

이경자 부회장은 금고 경영에 전혀 관여하지 않은 만큼 불법 대출건과는 무관하다고 발뺌하고 있다.

금감원은 계좌추적까지 했지만 4백억원의 향방을 아직 찾지 못했다. 금감원은 이 부회장이 동방금고에 사무실을 두고 사실상 금고 경영을 맡아왔다는 점을 들어 이씨에게 혐의를 두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 이 자금중 일부 또는 상당 부분이 鄭씨 명의로, 본인 몰래 금고에서 대출됐을 가능성이 있다" 며 이경자 부회장과 주변 인물의 개입 여부를 집중 추적중이다.

금융계에서는 이 자금의 상당 부분은 정.관계의 로비용으로 쓰여졌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씨와 鄭씨 모두 평소 정.관계 유력 인사와의 친분을 과시하고 다녔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얘기다.

◇ 고위직 연루설 확산=뇌물수수 혐의를 받고 있는 금융감독원 장내찬 국장은 24일까지도 잠적한 상태에서 금감원 감사실의 조사를 거부했다.

장국장에게 뇌물을 준 동방금고는 그가 비은행검사1국장 재임 시절인 1999년 검사를 받을 차례인데 여기에서 빠졌다.

여기에다 역시 정현준 사장이 대주주이던 대신금고는 당시 대출부실 때문에 사장이 해임권고를 받을 뻔하다가 2개월 정직이라는 훨씬 가벼운 징계를 받았다.

문제는 이같은 조치가 국장 한사람만의 힘으로 가능했겠느냐는 것이다. 장국장 잠적 이후 금감원 주변에서 임원급 이상 고위직이 연루됐다는 관측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금감원의 늑장조사도 이같은 의혹을 부채질하고 있다. 동방금고 노조에서 지난 21일 제보를 받고도 장국장이 종적을 감출 때까지 한번도 그를 조사하지 않았다.

일각에선 장국장이 지난 9월 인사에서 대기발령 받은 것도 이미 뇌물수수 혐의가 드러났기 때문이라는 소문도 돌고 있다.

◇ 10억 뇌물 사실일까=정현준 사장의 주장대로 유일반도체는 과연 10억원대 로비자금을 금융감독원 직원들에게 뿌렸을까.

로비설의 발단은 유일반도체가 지난해 6월 파격적 조건으로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해 거액의 주식 시세차익을 노릴 수 있도록 한데서 비롯됐다.

유일반도체는 당시 BW 보유자가 실제로 주식을 살 수 있는 가격을 실제 주가(10만원대)보다 80% 이상 싼 2만원, BW 만기는 무려 50년으로 정해 고작 1억1백만원만 들이면 1백20억원에 달하는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도록 했다.

이런 일은 당시 제도상 허점을 이용한 것일 뿐 불법은 아니었다. 다만 미심쩍은 구석은 남아 있다.

유일반도체가 지난해 상반기 사업보고서에 BW 발행사실을 누락시켰던 점이 그렇다. 헐값에 주식을 팔 경우 사업보고서를 통해 주주들에게 반드시 알려야 했지만 이런 의무를 게을리했던 것.

금융감독원은 이 부분을 조사하고도 가벼운 '경고 조치' 를 내리는데 그쳐 로비설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김광기.이정재.정경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