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정의 차이노믹스] 중국 구인난 “남는 죽 먹을 사람 없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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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역시 경제는 성장하고 볼 일이다.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근로자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지난해 8.7%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중국 얘기다.

중국 근로자들의 팔자가 얼마나 좋아졌는지는 동남부 연안 공업 벨트에 위치한 수출 임가공 업체들만 봐도 알 수 있다. 근로자들과는 반대로 이들 업체의 시름은 깊어진다. 경기가 좋아지는데 웬 시름이냐고. 일감이 늘면서 사람 구하기가 힘들어지는 ‘췌궁(缺工: 구인난) 현상’이 확산하기 때문이다.

요즘 중국에서는 근로자들의 대이동이 시작됐다.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나온 농민공(農民工)들이 춘절(春節: 중국의 설, 2월 14일)을 앞두고 장기간 연휴를 보내기 위해 집단 귀향길에 올랐다. 올해 중국 정부가 본격적인 귀성 수송 대책을 가동하는 시점(1월 30일)보다 앞서 귀성 전쟁이 시작됐다. 지난해에도 이맘때부터 대이동이 시작됐다. 하지만 지난해와 올해의 대이동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지난해 춘절 때는 근로자들이 빈손으로 고향행 열차를 탔다. 세계적인 금융위기 여파로 수출 주문이 최대 40∼50% 급감하면서 2000만 명 이상의 농민공들이 일자리를 잃고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다. 올해는 정반대다. 근로자들은 손에 선물 꾸러미를 한아름 들고 열차를 타고 있다. 일감이 넘쳐 좀 더 일을 하고 가라는 회사 측 설득에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 이유는 명확하다. 연휴를 보내고 다시 와도 일자리가 넘치기 때문이다. 후난(湖南)성이 고향인 한 농민공은 “예전에는 연휴를 보내고 돌아오면 일자리가 없어 고민했는데 이제는 일자리 걱정이 없어 고향에 일찍 간다”고 말했다.

단순 근로자뿐만 아니라 숙련 기술공 구하기도 힘들다. 기술집약형 업체들이 상대적으로 밀집한 장쑤(江蘇)·저장(浙江)성을 포함한 창장(長江) 삼각주 일대에는 ‘숙련 기술공 품귀 현상’도 심하다고 현지 언론이 전하고 있다. 임가공 업체들은 인력 확보 걱정 때문에 들어오는 주문을 덥석 받지 못하거나, 적기에 설비 확장을 못하고 있다.

한때 엄청난 인파가 몰렸던 구인·구직 행사가 요즘은 한산하다. 광둥성 중산(中山)시에서 지난해 12월 개최된 구인·구직 행사에서 300개 기업이 5000명을 모집했으나 1000명을 채용하는 데 그쳤다. 현지 기업주들은 “(1년 만에 상황이 반전돼) 먹을 죽이 남아돌자 이번에는 먹을 사람이 오히려 줄어들었다(粥多僧少)”고 말했다.

장세정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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