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YS는 못말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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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현직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는 그날, 전직 대통령은 대학생들과의 대치로 14시간 동안 '차 안 버티기' 를 하다 돌아가는 어이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고려대 초청으로 특강을 할 예정이었던 김영삼(金泳三.YS)전 대통령은 대학생들의 교문 봉쇄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지난달에는 이회창(李會昌)한나라당 총재가 연세대에서 남북문제와 통일론 특강을 한 뒤 학생들의 항의 시위로 학장실로 대피했다 뒷문으로 빠져나온 일도 있었다.

명문 사학에서 잇따라 이같은 사건이 일어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최고 지성을 자부하는 대학생들이 전 대통령이나 야당 총재의 초청 강의를 다수의 힘을 앞세워 저지하는 것은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할 수 없다.

YS가 IMF 사태를 초래한 책임이 있다 하더라도 책임 추궁과 특강 봉쇄는 별개 사안이다. 학문 연구기관으로서 대학이라면 실패한 정책의 사례 연구를 통해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는 방법도 배워야 할 것이다. 또 실패의 이유를 당사자에게 따지는 좋은 기회도 될 수 있었다.

학생들과 14시간 대치한 YS도 못말리는 성격이지만 차제에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특강은 '반(反) DJ와 반 김정일 운동' 의 의미 설명이라고 했다. 전직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의 통일정책을 정면으로 반대하는 내용인 셈이다.

현실정치 참여를 자제해야 할 전직 대통령으로서 상식과 품위를 잃는 처사라고 봐야 한다. YS는 대치 중 승용차 안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 소식을 듣고 "노벨상의 가치가 땅에 떨어졌다" 고 평했다고 한다. 민주화 투쟁 동지로서, 또 대통령을 지낸 국가 지도자로서는 너무나 상식 밖의 발언이다.

가뜩이나 김정일 반대운동과 민주산악회 재건 움직임 등으로 정치적 재기를 꾀한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YS의 이같은 발언은 특정 지역의 감정을 자극해 자신의 정치 세력을 강화하려는 의도라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학생들의 반대 시위도 문제였지만 '못말리는 YS' 에도 문제가 있다는 점을 YS 스스로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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