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길 먼 평화보장 체계] 군대치 해소 안되면 말잔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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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미 공동성명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정전협정의 평화보장체계 전환이다. 이는 한반도 정세의 기본틀로 작동해온 정전체제가 47년 만에 새로운 질서로 대체됨을 의미한다. 그러나 평양과 워싱턴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정전협정의 평화체계 전환은 1차적으로 6.25전쟁 이래 줄곧 휴전 상태에 있던 평양과 워싱턴이 전쟁 상태를 종식시키고 정상적인 국가 관계로 전환하는 것을 뜻한다.

동시에 이는 그동안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추진해온 한반도 냉전구도 해체가 본격화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국의 입장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정전협정 전환과정에서 서울이 소외되는 것이다.

이번에 발표된 공동성명은 "4자회담 등 여러 가지 방도들이 있다는 데 견해를 같이했다" 고 밝히고 있다.

이는 북.미 당사자 논리를 주장하는 북측과 한국의 2+2 방식을 주장하는 미국측 사이에 견해가 맞서 '4자회담과 여러 가지 방도' 라는 선에서 절충이 이뤄진 결과로 보인다.

이런 속사정을 감안할 때 향후 4자회담은 3자회담 등 다소 변형된 틀 속에서 재개될 공산이 크다.

성명에 등장하는 '평화보장체계' 라는 단어도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이는 평양이 워싱턴에 요구하고 있는 것이 단순히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체제보장▶주한미군▶외교관계 수립 등 포괄적인 내용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문제의 본질은 평화체계 전환이 아니라 진정 평화를 만들겠다는 평양의 의지다.

전문가들은 평화체계 전환에 앞서 남북 핫라인 설치 같은 신뢰구축과 군사적 긴장완화 조치가 선행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1백80만 병력이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군사적 대치 상황을 해소하지 않고서는 평화체계는 한갓 휴지 조각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교안보연구원의 윤덕민(尹德敏)교수도 "신뢰구축.군비통제 같은 긴장완화 조치가 없는 평화협정은 사상누각(砂上樓閣)에 불과할 것" 이라고 말했다.

최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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