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북 실상 알리고 돈도 벌어 탈북자 돕는 엘리트 탈북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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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1997년 7월 23일 오전 3시, 송옥(41·여·사진)씨는 어머니를 잃었다. 압록강을 건너 북한을 탈출하던 중 어머니 양종옥(당시 62세)씨는 중국 땅을 20여m 남겨 놓고 검은 물속으로 사라졌다. 먼저 강둑에 오른 송씨가 뒤를 돌아봤을 때 어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날이 밝아오고 국경 경비대의 수색이 시작되자, 송씨는 어머니의 시신도 찾지 못하고 도망쳐야 했다. 그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짓눌리는 것 같다”고 했다.

송씨는 고향을 떠나기 싫어하던 어머니를 설득해 탈북을 시도했다. 같은 해 아버지가 굶어 죽은 충격 때문이었다. 송씨는 “어머니는 식량을 구하기 위해 한 달간 장사를 나갔고, 나는 공부 때문에 장기간 집을 비운 사이에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이어 “먹고살 수만 있었다면 탈북은 안 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송씨는 자강도 경제전문 단과대학 출신이다. 북한에서는 ‘엘리트’에 속했다. 하지만 졸업 후에도 취업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6개월치 생활비에 맞먹는 뇌물을 건네지 않으면 일자리를 얻을 수 없었다. 송씨는 중국을 거쳐 2007년 한국에 들어왔다. 북한에는 남동생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송씨의 탈북 때문에 벌목 현장으로 추방당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친척들이 송씨를 ‘집안을 말아먹었다’고 비난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죄책감에 시달리던 송씨는 “열심히 살아서 통일된 뒤에 남북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자”고 결심했다. 2008년 서른아홉의 나이로 연세대 사학과에 입학한 이유다. 그는 매일 오후 10시까지 도서관에 남아 공부했다. 송씨는 “공부하지 않으면 남한을 깊이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송씨는 최근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책 『고향마을 살구꽃은 피는데』를 홍보하고 있다. 이 책을 직접 들고 다니며 지하철역이나 버스 정류장에서 판다.

수익금은 중국에 있는 탈북 어린이들의 학비로 지원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500여 권을 팔아 100만원 정도 모았다고 한다. 송씨는 22일 “탈북한 이후에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은 계속되고 있지만 탈북한 아이들이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어머니와 동생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남은 평생 새터민을 돕겠다”고 덧붙였다.

김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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