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집이 멀어서 생긴 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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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호 10면

장례식에는 가능하면 참석하는 것이 좋다. 그저 가는 것 자체가 슬픈 일을 당한 사람에게 큰 의지가 되고 말 없는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초상집이 너무 멀면 나는 안 간다. 거리가 멀어서 생기는 불편함이나 시간 낭비 때문은 아니다.장례식장의 금기 중 하나는 웃음일 것이다. 호상이라도 초상집에서 웃음소리가 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가끔 초상집에서 웃음이 나는 경우가 있다. 초상집이 너무 멀리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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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금지는 감정을 걷잡을 수 없이 격하게 만든다. 슬퍼서 눈물이 자꾸 나는데 울 수 없다면 그 상황이 사람의 마음을 더 서럽게 만들고 북받치게 한다. 웃음도 마찬가지다. 우스운데 웃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면 그런 상황 자체가 더욱 참을 수 없는 웃음을 촉발한다. 웃음에는 그런 도발과 전복이 있다. 나는 멀리 있는 초상집에는 문상을 가지 않는다. 웃음이 터져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전에 함께 일했던 K대리는 정도 많고 눈물도 많아서 주위 사람들의 대소사를 잘 챙겼다. 또 같은 이야기라도 재미있고 재치 있게 말해 주변에 늘 사람이 따랐다.어느 날 K대리는 남편 직장 동료의 부친상 문상에 따라갔다. 상갓집이 시골이라 서둘러 나섰지만 도착하니 새벽 세 시가 넘었다. 문상객들은 다들 한쪽에 웅크리고 잠이 들었고 몇 사람만 남아 화투를 치고 있다. 상주도 잠시 벽에 기대어 까복까복 졸고. K대리 부부가 도착하자 상갓집은 다시 활기를 띤다.

곡 소리가 나고 몇은 잠에서 깨어나 다시 술잔을 비우고 부엌에선 손님 맞을 상을 차린다. K대리는 남편과 함께 고인 영정을 향해 두 번 절하고 상주와도 맞절한다. 절을 한 후 상주가 K대리 남편의 손을 잡고 잠시 울먹인다. K대리는 눈물이 많은 사람이라 누가 울면 자기도 따라 운다. 남편은 아무 말 없이 상주의 손을 꾹 잡아준다. 겨우 상주는 표정을 가다듬고 아직도 어깨를 들썩이는 K대리를 향해 말한다.

“이렇게 멀리까지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K대리도 눈물을 닦고는 힘껏 밝은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리고 상주에게 위로가 될 말을 한다.
“뭘요. 이런 게 다 씨받이죠.”

원래 K대리가 하고 싶었던 말은 ‘씨받이’가 아니라 ‘품앗이’였다. 왜 품앗이라는 말 대신에 씨받이라는 말이 나왔는지는 K대리 자신도 모른다. 또 품앗이라는 말이 과연 그 상황에서 적절한 말이었는지는 지금도 의문스럽다. 그래도 씨받이보다는 나았으리라.

나는 K대리에게 그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먼 곳으로 문상 가는 일이 곤혹스럽다. 상주로부터 “이렇게 멀리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라도 듣게 되면 저절로 그 ‘씨받이’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채기처럼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어찌 감출 수도 멈출 수도 없기 때문이다. 도리가 아닌 줄 알지만 내가 먼 곳으로 문상을 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대한민국 유부남헌장』과 『남편생태보고서』책을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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