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강형철 '사랑을 위한 각서8-파김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호남선 터미널에 나가면

아직도 파김치 올라온다

고속버스 트렁크를 열 때마다

비닐봉지에 싼 파김치 냄새

텃밭에서 자라 우북하였지만

소금 몇 줌에 기죽은 파들이

고춧가루를 벌겋게 뒤집어 쓰고

가끔 국물을 흘린다

호남선 터미널에 나가면

대처에 사는 자식들을 못잊어

젓국에 절여진 뻣뻣한 파들이

파김치 되어 오늘도 올라온다

우리들 어머니 함께

- 강형철(45) '사랑을 위한 각서8-파김치'

버스터미널에 나가면 시골 들판에서 여름내 땀흘려 거둔 곡식과 과일, 그리고 어머니가 손수 익힌 밑반찬들이 줄레줄레 올라온다. 그 어느 하나도 식욕을 돋우지 않는 것이 없지만 강형철은 호남선을 타고 오는 파김치에 조금은 특별한 소금과 고춧가루.젓국을 버무려 우리네 어머니의 가슴 속에 절여진 이야기를 맛보게 한다. 텃밭에서 매운 냄새를 풍기며 쫑긋쫑긋 일어서는 파줄기 같은 언어로.

이근배 <시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