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영 현대산업개발회장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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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이것 저것 생각할 것 없이 대우차는 부실이 심각한 만큼 정부가 과감한 결단을 내려 이른 시일 안에 일괄 매각하는 게 유일한 해법입니다."

대우자동차 매각 문제가 현안으로 떠오른 가운데 31년 동안 현대자동차를 이끌었던 한국 자동차 업계의 산 증인 정세영(鄭世永.72.사진)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을 단독으로 만났다.

鄭명예회장은 태미 오버비 주한미상의(AMCHAM)상근 부회장의 연임을 축하하기 위해 보즈워스 주한미국대사 부처가 5일 서울 정동 미국 대사관저에서 마련한 저녁 모임에 참석했다.

'포니 정' 이라 불리는 그는 이날 한시간 반 이상 파티장 곳곳을 오가며 외국 기업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등 지난해 암투병 이후 건강을 되찾은 듯 활기찬 모습이었다.

- 대우차 매각 실패로 요즘 시끄럽다. 정부에서 鄭회장에게 인수 업체를 찾을 때까지만이라도 경영을 맡아달라고 요청했지만 건강을 이유로 고사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런 제안을 받은 적이 없다. 건강 얘기를 하는데 이젠 아무 문제가 없다. 암도 완전히 치유돼 정기적으로 검진받는 게 전부다. 사무실(현대산업개발)도 자주 나간다. (웃으며)얼마 전 수상스키를 타다가 어깨를 조금 다쳐 지금 물리치료를 받는 게 더 큰일이다."

- 정부가 공식적으로 대우차 위탁경영을 요청해오면.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다. 이야기도 없는데(내 쪽에서) 먼저 생각할 것은 없지 않은가."

- 대우차 매각 방식을 놓고 말이 많다. 대우차.쌍용차 등 부문별로 분할해 매각한다든가, 현대차가 위탁경영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는데.

"대우차는 부실이 정말 심각한 회사다. 정부가 보다 열린 마인드로 접근해야 한다. 그냥 놔두면 앉아서 한해에 1조2천억원의 부실이 생기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가격에 얽매이지 말고 하루라도 빨리 일괄 매각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분할매각이나 위탁경영 방식도 옳지 않다. 몇년 전 대우가 자랑하는 폴란드 대우차공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그쪽에선 27만대의 생산능력을 갖춘 회사라고 설명했지만 나는 이미 그때에도 경쟁력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

- 현대차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텐데. 정몽구(鄭夢九)회장이 잘 꾸려간다고 보는지.

"전임 경영자로서 현대차 경영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다임러크라이슬러와 손잡은 것도 그렇고 현재까진(몽구회장이) 마케팅이나 생산 등 모든 면에서 잘해 나가고 있다. 현대차에 대해선 큰 걱정이 없다."

- 정주영(鄭周永)명예회장은 자주 만나는지. 만나면 혹 그룹의 경영권 갈등 같은 이야기도 나누는지.

"형인데 자주 만나지 않겠나. 최근에는 기력을 완전히 회복해 계동.청운동.병원(현대중앙병원) 등 이곳 저곳 많이 움직이신다. 너무 많이 돌아다녀서 만나려면 먼저 어디 계신지 물어봐야 할 정도다. 오래 전부터 말을 줄이셔서 만나면 거의 내 건강을 염려하시는 정도다."

- 세계 자동차 시장이 급변하고 있다. 메이저 업체간 인수.합병(M&A)도 활발하다. 이 때문에 현대차도 걱정이 많을 텐데.

"세계 자동차 시장이 제너럴모터스(GM) 등 대형업체 다섯 곳 정도로 재편된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는 근거 없는 주장이다. '5대 자동차 업체 생존설' 은 1980년대 초반 하버드대 등 일부 미국학자들이 한때 들고 나온 이야기다. 지금 상황도 그때 이야기를 단순히 리바이벌하는 것이다. 지금 업계를 봐라.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큰 업체든 작은 업체든 나름대로 다 생존해 자리잡고 있지 않은가."

- 올들어 외국 자동차업체의 국내 시장 공략이 매우 활발하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파티에 참석한 한 외국 자동차 업체의 한국 지사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국민적인 반감 때문에 수입차 판매가 안된다고 하소연했다. 내가 그 자리에서 반박했다. 국민소득 수준을 감안해도(선진국과 비교해) 80% 이상 자동차 시장을 개방했는데 수입차들이 한국인의 기호에 맞는 제품이나 서비스 개발에 별로 신경쓰지 않는 만큼 결과가 안 좋은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표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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